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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뉴 스페이스’는 ‘민간 우주 개발’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인간은 늘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달에 토끼가 있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기도 했고, 지구의 자원이 부족해지는 염려에 대안으로 다른 행성의 자원을 활용할 수 없는지, 나아가서는 화성 같은 곳에서 인간이 살 수는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 왔다.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한 이래 우주 개발은 강대국들과 정부의 몫이었다. 첨단 과학기술력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2022년 누리호 발사를 성공시킴으로써 세계에서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발사한 11번째 나라가 됐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이제 민간기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우주항공산업에 진출한 대표적인 민간기업으로는 스페이스엑스, 블루오리진, 버진갤럭틱 등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은 아니다. 가장 먼저 설립된 기업은 2000년에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오리진이라고 한다.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앨런 셰퍼드의 이름을 딴 뉴 셰퍼드로 유명한데, 오로지 관광 목적으로 개발 중인 발사체다. 2015년 4월 첫 실험에서는 발사체 회수에 실패했지만, 그해 11월 두 번째 실험에서 발사체와 캡슐을 재활용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스페이스엑스의 ‘팔콘9’이 착륙한 12월보다 한 달 빠른 성공이었다. 지금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엑스가 더 활발히 나서고 있다. 이들 회사는 2021년 우주 관광에 성공하면서 민간 우주 관광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고 있다. 이렇듯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 사업에서 민간기업 주도의 우주 개발 시대가 열렸다.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을 ‘올드 스페이스’(old space)라고 하고 이에 대비로 민간기업 주도의 우주 개발 사업을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부른다고 한다. 뉴 스페이스는 국가 소유로 여겨졌던 발사체와 위성 분야 기술이 개방되고 생산 비용이 절감되는 등 우주항공산업의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국가와 거대 기업이 주도하던 우주항공산업이 민간·중소 기업으로 이전되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새말 모임 위원들도 발 빠르게 ‘뉴 스페이스’를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한 논의를 했다. 영어 단어로만 보면 아주 단순하다. 새 우주. 우리말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러나 새 우주라는 말로는 어떤 점에서 이전과 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이의가 제기됐다. 논의한 끝에 위원들은 낱말의 본래 의미를 충실히 살린 ‘민간 우주 개발’과 낱말을 직역해 간단하게 부를 수 있는 ‘새 우주’ 두 가지를 후보로 채택했다. 이제 국민들이 선택할 차례다. 수용도 조사에 참여한 국민들은 직역으로 된 낱말보다는 낱말의 본래 의미가 잘 드러난 ‘민간 우주 개발’을 매우 높은 비율(90.9%)로 선택했다. 직역한 말보다는 의역한 말 들었을 때 바로 어떤 내용인지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낱말이 선택된 것 같다. 참고로 ‘뉴 스페이스’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72.9%가 나왔다.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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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그루밍 성범죄’는 ‘환심형 성범죄’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그루밍 성범죄’,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피해자와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가해자를 잘 따르도록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가출 청소년 등 범죄에 취약한 층을 대상으로 잠자리나 음식 등을 제공해 호감을 산 뒤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해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그런 예다. ‘가출 도우미’를 자처하며 가출한 여학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겠다고 접근해서 그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루밍(grooming)은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 말끔하게 꾸민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원래 동물의 털 손질, 몸단장, 차림새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고양이가 자신의 몸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혀로 온몸을 핥거나 이빨, 발톱으로 털을 다듬는 행동을 고양이 그루밍이라고도 한다. ‘안면 트기 대화’라는 뜻의 ‘그루밍 토크’(grooming talk)라는 말에서도 보듯이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새말 모임의 위원들은 ‘그루밍’만을 따로 다듬어야 하나, 성범죄까지를 포함해야 하나 고민했다. 논의 끝에 ‘그루밍’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으로 쓰이는 면이 많이 있어서 ‘그루밍 성범죄’라는 용어를 다듬어 제안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안이 나왔다. 길들이기 성범죄, 길들임 성범죄, 사로잡기 성범죄, 환심형 성범죄, 유인형 성범죄, 꼬드김 성범죄. 토의 끝에 ‘길들이기 성범죄’와 ‘환심형 성범죄’를 후보로 제안하기로 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그루밍 성범죄’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에 64.4%가 응답했고, 우리말 대체어로 ‘환심형’ 성범죄를 1순위로 선택했다(75.8%). 환심형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피해 당시에는 자신이 성범죄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사와 학생, 성직자와 신도, 의사와 환자 등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 교사, 성직자, 의사, 직장 상사, 복지기관의 담당자 등이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거역할 수 없는 자신의 권위를 범죄에 이용하는 것인데, 자신이 보호해야 할 대상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면에서 가정폭력범과 같이 죄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죄질이 나쁜 범죄용어를 어려운 외국어보다 의미를 바로 알 수 있는 우리말로 붙여 설명해야 범죄 예방에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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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여행 규칙 아닌 ‘트래블 룰’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외국어로 된 신조어를 문장 속에서가 아니라 앞뒤 맥락 없이 만났을 때 종종 그 뜻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트래블 룰’(travel rule)이 바로 그랬다. 고백하건대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 당연히 여행 용어인 줄 알았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외국 여행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생겨난 규약이나 제도라고 짐작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금융 용어였다. ‘트래블 룰’의 뜻은 “온라인에서 가상자산이나 자금을 주고받을 때 자금 세탁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주고받는 사람의 정보를 기록하게 하는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산의 이동에 대한 제도를 일컫는 말에 ‘유통’, ‘거래’, ‘자금이동’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하필 ‘여행’이라는 말을 써서 헷갈리게 했을까. 이는 이 용어가 미국에서 ‘직수입’됐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트래블 룰’이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들리게 된 것은 최근이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존재한 용어다. 미국에서는 1970년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해 ‘은행 보안법’(혹은 은행 비밀유지법(BSA·Bank Secrecy Act))을 만들었고, 1996년 자금이 이동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는 규제를 강화해 이 법안에 추가했으니 이것이 ‘일명’ 트래블 룰이다. ‘일명’에 작은따옴표를 넣은 것은 정식 법규 명칭이 아니라 미국에서 역시 별칭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존재한 용어가 우리 언론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6월 이후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가 이 법규의 대상에 암호화폐, 즉 가상자산을 추가하면서다. 그러다 올 3월 25일 국내에서도 특정금융거래정보법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에 이 규칙을 적용하면서 국내에서의 용어 사용이 봇물 터지듯 늘어났다.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실시돼 온 제도가 가상화폐로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국내까지 도입되면서 제도와 함께 그 별칭까지 따라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길들지 않은 표현이다. 우리 언어문화에서는 돈의 이동을 ‘여행’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이 여행한다는 것인지, 규칙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도 이 용어만을 놓고 보면 파악하기 어렵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잘 보여 준다. 2000명의 응답자 중 92%가 넘는 이들이 ‘트래블 룰’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보았거나, 들어 본 적은 있으나 예상했던 것과 다른 뜻이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 용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고치면 원래 이 제도가 가진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간 우리 언론에서 트래블 룰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함께 쓴 우리말 표현을 훑어 보자. ‘자금이동 규칙’, ‘전신 송금의 원칙’, ‘전신 송금 시 정보 제공’, ‘자금 추적 규제’ 등이 있다. ‘코인 (금융) 실명제’라는 별명을 붙인 경우도 있지만, 원래 이 제도가 가상자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 자산 일반에 적용됐던 것임에 비춰 볼 때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새말 모임에서는 기존에 쓰여 온 여러 표현을 바탕으로 ‘송금 정보 기록제’라는 새말을 다듬었다. 즉 이 용어가 ‘돈의 흐름(송금)’에 관한 제도이며, 그중에서도 ‘정보 기록을 통한 투명성 확보’를 목표로 했다는 점을 명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트래블 룰’(말 그대로 보자면 여행 혹은 이동 규칙)이라는 은유적 표현과 달리 더이상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분명하게 그 뜻이 전달되는 용어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일곱 글자로 명료하게 뜻을 전달할 우리말 표현을 제시할 수 있는데도 제도 시행 때 이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다. 올해 3월 금융위원회는 이 제도의 시행을 놓고 “가상자산의 이전과 함께 송수신인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트래블 룰)가 본격 시행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미리 우리말을 다듬어 두었다가 공식적 제도 이름으로 발표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앞으로 이렇게 외국의 기존 제도를 들여와 국내에서 시행할 때는 여러 관련 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적절한 우리말 용어를 마련해 제도 시행을 발표할 때부터 분명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면 하는 바람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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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네버 코비드’가 아닌 ‘코로나 비감염’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새로운 현상, 새로운 상황에 닥치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곤 한다.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 역시 이 질병과 관련된 여러 신조어를 만들어 냈으니, 그중 하나가 오늘 살펴볼 ‘네버 코비드’(never COVID19)다. ‘네버 코비드’는 “코로나19에 한 번도 확진되지 않은 상태, 혹은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용례를 살펴보면 살짝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아직 코로나에 걸려 본 적이 없는(그러니까 언제라도 걸릴 가능성이 있는) 상태 혹은 사람”이란 뜻이다. “(코로나 재유행이 오면서) 2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코로나19에 안 걸린, ‘네버 코비드’ 시민들 불안도 높아지고 있다”(머니투데이 2022년 7월)란 기사가 그 예다. 한편 “네버 코비드란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코로나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원인으로 다른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교차 면역, 유전적 차이, 점막 면역 차이, 환경적 상황 차이가 있다”(동아일보 2022년 5월)는 기사를 보자. 앞선 기사의 맥락과 달리 ‘아직 안 걸린 게 아니라 감염 가능성 자체가 낮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어떤 의미로 사용하든 우리 언론에 올 5월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최근까지 무려 1만 8000번 넘게 언급될 만큼 널리 사용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얼마나 많이 쓰는 말일까. ‘네버 코비드’는 구글 영문판에서도 검색된다. ‘노비드’(Novid, No-covid의 축약어), ‘코비드 버진’(covid virgin) 등의 표현도 눈에 띈다. 하지만 “네버 해브/해드(have/had) 코비드”라고 풀어 쓴 경우에 비해 검색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네버 코비드’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용했던 ‘네버 트럼프’란 구호를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절대) 안 된다”라는 뜻이다. 보통 ‘네버’(never) 뒤에 명사가 붙으면 “~은 안 된다(반대한다)”로 해석된다. ‘네버 코비드’도 마찬가지다. ‘코비드’가 명사인 만큼 “코비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철저한 방역을 다짐하는 구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런데도 굳이 ‘네버 코비드’라는 표현을 써야 할까? 우리가 지금까지 이 지면에서 살펴본 다른 신종 외국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표현을 쓸 특별한 이유는 물론 없다. 시민들의 의견도 같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8%가 ‘네버 코비드’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네버 코비드’ 대신 적절한 우리말도 계속 쓰여 왔다. ‘코로나 비감염(자)’ 혹은 ‘미감염(자)’이 그것이다. 여론조사에 응답한 시민들 역시 ‘네버 코비드’를 ‘코로나 비감염’으로 바꾸는 데 77.2%가 적절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 비감염’을 ‘네버 코비드’의 공식적인 대체어로 발표했다. 잠깐, 여기서 ‘비감염’과 ‘미감염’의 차이를 알아보자. 비슷한 표현이지만 다름이 아예 없지는 않다. 사전상 의미를 찾아보면 ‘비감염’은 “다른 개체로의 전염 가능성이 없는 것”을 뜻하고, ‘미감’(未感)은 “병 따위에 아직 감염되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앞서 ‘네버 코비드’의 두 가지 용례 중 ‘코로나 강력 면역체’는 ‘비감염자’에 해당되고,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미감염자’에 가깝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 일반’은 비단 강력 면역체가 아니라도 ‘현재 다른 사람에게 전염성이 없다’는 뜻에서 ‘비감염자’라는 표현을 써도 무관할 것이다. 앞서 새로운 시대 상황 혹은 현상이 새로운 말을 낳는다고 했다. 코로나 발발 이후 정말 많은 코로나 관련 신조어가 나타났다. ‘코로나’는 고유한 바이러스 이름이기 때문에 우리말 대체어로 바꿀 수 없어 그대로 사용하는 외국어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외국어를 쓰자 여기 덩달아 불필요하게 영어를 앞뒤로 붙이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롱 코비드’(코로나 감염 후유증),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한 우울), ‘코로나 레드’(코로나로 인한 분노) 등이 그것이다. ‘코로나’라는 고유명사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말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나 보통명사까지 영어로 덧붙여서야 되겠는가. 안 될 일이다. 게다가 이 같은 ‘나쁜 관습’은 앞으로도 새로운 영어 고유명사가 도입될 때 반복해 나타날 수 있다. 특별히 경계하고 멀리해야 마땅할 일이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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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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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지승호
- 등록일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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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죽음이라 이야기할 수 있기를 _ 웰다잉과 존엄한 죽음 유 경(사회복지사,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2004년 서울의 한 노인대학에서의 특강이 시작이었다.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썼던 저자”¹⁾라는 기사 내용처럼, 내가 죽음준비교육 현장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는 수강생 대부분이 어르신인 까닭에 조심스럽기도 했고 ‘죽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심해, 강의 제목에 ‘죽음’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담당자들과 번번이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떠남의 모든 과정을 품위 있고 존엄하게 대처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삶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죽음을 죽음이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단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강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는 담당자들의 의견에 마냥 반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빼고 만든 죽음준비교육과정 제목으로는 ‘하늘소풍 이야기, 아름다운 마무리 준비 교실, 홀로 가는 길’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림1. 죽음준비교육을 듣는 어르신들 그러던 중 ‘웰다잉(well-dying)’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2006년 미국의 ‘좋은 죽음’(Good Death)을 ‘웰다잉’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²⁾했다고 하지만 아직 규범 표기도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 뜻 또한 “임종문화에 관한 포괄적 용어로 정확한 정의 없이 사용되고 있”³⁾다. 내 개인의 경험으로는 죽음준비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던 시기가 마침 우리 사회에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던 시기와 겹치면서 웰빙의 짝 단어로 웰다잉이 등장했고, 별다른 이의 없이 널리 퍼지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웰다잉은 강의 제목뿐만 아니라 시민운동단체 이름에도, 지방자치단체 조례에도 본래 우리말이었던 것처럼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웰다잉을 알기 쉽게, 특히 죽음준비에 가장 관심이 많은 노년 세대가 단번에 이해하도록 바꿀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도 다양하게 정의하는 웰다잉의 뜻 - 좋은 죽음, 훌륭한 죽음, 준비된 죽음,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 편안하고 고통 없이 죽는 것, 행복한 죽음 맞이,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 유언 작성∙장례 준비∙상속과 기부∙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물건 정리∙관계 바로 세우기 등 - 모두를 아우르면서 좋은 죽음의 ‘죽음(Death)’과 웰다잉의 ‘죽어감(Dying)’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죽음 자체는 물론이고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는 과정의 중요함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또한, 이미 웰다잉을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나 제목에 그대로 집어넣어도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 좋겠다. 현재 사용하는 말 중에서 “존엄한 죽음”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에서도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⁴⁾이라고 밝히고 있다. 죽음의 시기를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앞당기는 일(예: 자살), 현대 의학 기술에 의존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를 놓치는 일(예: 지나친 연명의료), 삶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예: 중증 치매 노인의 요양시설 임종)이 무수히 발생하는 현실에서,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존엄한 죽음”이라는 말로 웰다잉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명칭에 적용해본다면, 〈서울특별시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는 〈서울특별시 존엄한 죽음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로 바꾸어도 그 의미나 문장 흐름에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고독사(또는 무연사, 無緣死)도 인간의 삶과 죽음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 가장 적나라한 현장이기에 사회 전체가 나서서 관심을 갖고 대책을 세우려 노력하는 것이니 존엄한 죽음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웰빙은 웰다잉으로 완성되고 웰다잉의 끝은 결국 생명 존중과 생명 사랑에 이르게 되는데, 존엄한 죽음이야말로 삶의 완성이며 생명 존중과 생명 사랑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죽어감’에 닿게 된다. 우리가 존엄한 죽음을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속에는 그 과정 또한 존엄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인데, ‘존엄한 죽음’이라는 말을 통해 존엄한 죽음과 존엄하게 죽어감을 충분히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2. 죽음준비교육 수업 중 작성한 어르신의 자필 유언장 다만 존엄사와 안락사의 의미가 혼동되고 ‘조력존엄사’⁵⁾가 논의되는 현실에서. ‘존엄한 죽음’을 ‘웰다잉’의 대체 언어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정확하게 그 뜻을 풀이하고 그 말이 품고 있는 다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존엄한 죽음은 서로가 서로를 상호 인정하고 존엄하게 대우하는 삶의 끝자락에 만나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품위이다. 그러므로 존엄한 죽음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과정과 순간 역시 친절과 배려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1) 2008. 11. 6. 연합뉴스 2)『지혜로운 삶을 위한 웰다잉』(건양대학교 웰다잉 융합연구회, 2016) 3)『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보건복지부∙국가생명윤리정책원, 2019) 4)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제1조(목적) 5)말기환자에 해당하는 사람 중 조력존엄사대상자가 본인의 의사로 담당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하 는 것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2022. 6. 15 발의. 의안번호 15986. 3쪽) 유 경 사회복지사,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마흔에서 아흔까지』, 『유 경의 죽음준비학교』, 『엄마의 공책(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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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유 경
- 등록일 :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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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가상 세계에도 패션이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언제부터인가 ‘메타’(meta)라는 단어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메타’란 ‘사이, 초월’ 등을 뜻하는 말로, 형이상학을 가리키는 ‘메타피직스’(metaphysics), 보다 높은 차원의 인지 또는 사고 활동을 뜻하는 ‘메타 인지’ 등 다소 낯설고 추상적인 인문학 용어에 쓰이던 말이었다. 그랬던 것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3차원 가상 세계에서 이뤄지는 여러 가지 활동을 일컫는 표현에 ‘메타’를 말 앞에 붙이면서 마치 일상용어처럼 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메타 버스’. ‘메타’와 ‘유니버스’(universe)를 합한 말로, ‘확장 가상 세계’(가상 융합 세계)를 뜻한다. 오늘 살펴볼 ‘메타 패션’도 그 한 갈래다. ‘메타 패션’은 확장 가상 세계에 등장하는 아바타의 피부, 옷, 신발, 장신구 등을 아우르는 디지털 패션이다. 의류 업체 혹은 디자이너가 확장 가상 세계에 디지털 기술로 만든 옷이나 신발 등을 올리면 이를 이용자들이 대체 불가 토큰 등을 지불하고 구매해 자신의 아바타에 입혀 누리소통망 공간에 올리는 식으로 유통, 소비된다. 2021년 12월 디지털투데이 기사에서 처음 언급됐으니 비교적 따끈따끈한 신조어인데, 반년 좀 넘는 사이에 벌써 9만 7000번 언급될 만큼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일단 ‘메타 패션’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나면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할지를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대로 ‘메타 버스’가 ‘확장 가상 세계’라는 다듬은 말로 이미 소개된 바 있기 때문이다. ‘메타’라는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용어인 만큼 ‘메타 버스’의 대체어와 통일성을 가진 말로 다듬어야 마땅할 터. 그래서 새말모임 위원들은 ‘가상 세계 패션’이라는 말을 다듬은 말 후보로 가장 먼저 뽑았다. 물론 ‘패션’ 대신 ‘의상’ 혹은 ‘의복’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패션’은 굳이 우리말로 대체할 필요성을 의심할 만큼 이미 우리 언어문화에 뿌리를 내린 ‘외래어’라는 점에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논의한 다듬은 말 후보는 ‘디지털 의상’. ‘디지털’ 역시 과거 여러 차례의 논의 과정에서 ‘우리말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을 얻은 바 있는 단어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디지털 태생’, ‘디지털 노마드’를 ‘디지털 유목민’으로 다듬은 것처럼. 그러나 ‘디지털’에 ‘패션’까지 결합해 ‘외래 용어+외래 용어’로 이뤄진 말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디지털’이라는 표현 뒤에 ‘의상’이라는 우리말을 조합해 만들었다. 이후 ‘아바타 의상’이라는 표현을 논의했다. 옷을 입는 주체가 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 ‘가상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고 활동하는 아바타’라는 점에서 착안한 용어다. 그런데 잠깐. ‘아바타’라는 단어도 우리말로 다듬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국립국어원에서 2002년에 일찌감치 ‘분신’ 혹은 ‘가상 인물’이라는 다듬은 말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이를 사용하는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해 ‘아바타’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들 세 후보를 놓고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새말모임 위원들이 예상한 대로 ‘가상 세계 패션’이 82.4%로 매우 높은 선호도를 보이며 채택됐다. ‘디지털 의상’이 71.4%로 뒤를 이었고, ‘아바타 의상’은 51.6%의 선호도를 보였다. ‘가상 세계 패션’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은 만큼 앞으로 사용도 역시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한편 새말모임 위원들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작 ‘메타’의 어원이 비롯된 영어권에서는 ‘메타 패션’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영어권에서는 이를 무엇이라 칭할까. 구글을 검색해 보면 과연 국내 언론의 영문 번역판을 제외하고 ‘메타 패션’(meta fashion)이라는 영문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검색되는 것은 ‘메타버스 패션’(metaverse fashion). 우리와 같이 ‘메타’라는 접두어만 붙여서 사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함께 찾을 수 있는 표현으로는 ‘디지털 패션’(digital fashion)과 ‘엔에프티 패션’(NFT fashion)도 있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가상 현실을 일컫는 표현에 ‘메타’라는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미국의 작가 닐 스티븐슨이 소설 ‘스노크래시’에서였다고 한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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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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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와 무장애 여행, 용어 접근성부터 전윤선((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억눌렸던 여행 심리가 활화산처럼 분출되고 있다. 관광약자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등 관광약자는 다양한 접근권이 확보되어야 여행하는 데 불편함을 덜 느끼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 접근권의 가장 핵심은 물리적 접근성이다. 이동 접근성, 건물 접근성 등 물리적 접근성은 여행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물리적 접근성의 첫 번째 요소는 이동이다. 여행의 기본은 이동이기 때문이다. 정보 접근성도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여행에 대한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관광약자에게 맞게 가공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다. 응대(서비스) 접근성도 그렇다. 여행은 소비 행위이기 때문에 소비자로서 정당한 응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여기에 용어 접근성이 추가되어야 한다. 무장애 여행과 관련된 용어에 외국어가 많다 보니 장애인, 고령자에게 낯설고 입에 붙지 않아 언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무장애 여행 정신에 배치되는 용어는 지양하고 우리 언어와 한글로 바꿔 사용해도 충분하다. ▲ 무장애 시설물 배리어프리 투어리즘(BF Tourism, Barrier-free Tourism) 장애인과 고령자 등 물리적 접근에 제약받는 사람들을 위해 물리적,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야 한다. 배리어프리 투어리즘은 일반적으로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장벽을 없앤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은 2015년부터 공공 시설물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BF 인증)’를 시행하고 있다. 여행에도 배리어프리 투어리즘이 접목돼 사용되면서 범주가 확장되고 있다. 배리어프리는 물리적 접근이 불가했던 건축물에 경사로를 놓아 보행약자도 안전하게 건물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확장성을 말한다. 이는 여행지에도 그대로 적용돼 무장애 여행, 접근 가능한 여행(Accessible Tourism)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배리어프리 투어리즘을 우리말로 바꾼다면 ‘장벽 없는 여행’ 또는 ‘장벽 없는 관광’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훨씬 매끄럽고 언어 접근성이 높아진다. 유니버설 투어리즘(Universal Tourism) 유니버설 디자인은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혹은 ‘보편적 디자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령, 성별, 국적, 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로 바꾸어 말하자면, 범용 디자인인 셈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가 있는 이용자를 위해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배리어프리 디자인(Barrier-free design)과 구분된다. 그러나 유니버설 디자인은 배리어프리 디자인의 개념을 포함하여 더욱더 많은 이용자 계층을 고려하는 것으로, 더 넓은 범위를 가진 이용자 중심의 디자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건물의 물리적 접근성을 위해 기본구상, 기본기획, 기본설계, 시공(현장), 유지관리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유니버설 디자인을 고려하여 건물을 설계한다. 휠체어 진입 가능성은 차별 없는 접근성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조건이다. 엘리베이터도 있어야 하고 입구에는 턱이 없어야 한다. 장애인 화장실과 성 중립성, 즉 다목적 화장실이 있어서 성 지향성,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 유니버설은 여행 상품에도 적용된다. 모든 사람은 관광을 통한 체험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어떠한 장애물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동성, 시각, 청각, 인지적인 측면의 장애로 인해 관광상품, 서비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독립적이고 평등하게 관광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범용으로 디자인된 관광상품, 서비스,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유니버설 여행의 가치고 핵심이다. 위와 같이 장애인 등 관광약자에게 장벽 없는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기에 모두를 위한 관광(Tourism for All)이라 말할 수 있다. 인크루시브 투어리즘(Inclusive Tourism) 인크루시브 투어리즘도 위에서 설명한 두 용어와 맥락을 같이한다. 모두를 위한 관광에 ‘포용’이란 핵심어를 더하면 포용 관광이 된다. 포용 관광은 그동안 관광에 소외됐던 장애인 등 관광약자를 포용한다는 뜻이다. “모두를 위한 관광”은 장애, 연령, 성별, 인종, 국적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조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게 여가 문화를 즐기도록 하는 일련의 서비스와 시설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물리적 환경의 개선, 교통수단 제공, 정보 및 의사소통 응대(서비스)가 있다. 장애인·고령자·임산부·영유아를 포함하는 모든 사람이 어떤 유형의 관광 활동이라도 자유롭고, 편안하고, 안전하고 독립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관광(물리적 환경, 정보제공, 인적 지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는 무장애 관광(Barrier-free Tourism),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 유니버설 관광(Universal Tourism), 포용 관광(Inclusive Tourism) 등의 용어를 혼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무장애 관광’, ‘장애인 관광’을 주로 사용하여 보편적인 개념인 ‘모두를 위한 관광’으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는 추세다. 트레블 헬퍼(Travel Helper)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등 관광약자에게는 여행 도우미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 관광약자는 이동과 시설 이용 및 정보 접근 등의 제약으로 관광활동이 어려운 사람을 뜻한다. 더 나아가 관광의 제약을 받은 모두가 관광약자이기도 하다. 관광약자는 다양한 요인과 상황에 따라 정의될 수 있다. 사회·경제적 요인으로는 동행인이 없거나 관광 비용이 부담되는 경우가 있다. 의료·종교적인 요인도 포함된다. 식이 조절이 필요하거나 음식 선택의 제한이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의사소통의 요인으로는 인지 제한 혹은 청각ߵ발달 장애가 있거나 우리나라 말과 글을 모르는 외국인도 포함한다. 이동의 제한 요인은 보행 보조 기기를 사용하며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를 말하고, 관광약자와 동행할 때도 포함된다. 장애인 등 신체적, 정신적 약자는 타인의 도움이 있어야 여행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장애 여행 도우미는 무장애 여행의 필수 조건이다. 세계관광기구(WTO)는 신체་사회ߵ문화 조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고 공정하게 관광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상품, 서비스, 환경을 제공하는 관광이라는 의미를 담아 ‘모두를 위한 관광’을 정의했다. 모두를 위한 관광은 관광약자만을 위한 관광은 아니다. 그러나 관광약자를 고려해 기반을 마련한다면 모두가 안전하고 편리한 관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러려면 관광약자에 대한 관심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무장애 관광 문화가 해외에서 유입된 것은 사실이나, 국내에 정착하는 단계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외국어를 이제는 우리말과 우리글로 바꿔 써야 한다. 무장애 여행은 보편적이고 평등하며 공정해야 한다. 공정한 여행의 기본은 정당한 편의 제공에서 비롯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어 접근성부터 살펴야 한다. ▲ 모두를 위한 여행 전윤선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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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전윤선
- 등록일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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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대통령 집무실 입구에서 아침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단언컨대 요즘 우리 주변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신종 외국어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라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언론과 누리소통망 등의 공론장에 이 용어가 오르내리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들과의 실시간 소통’을 표방하며 용산 집무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현안에 관련해 간단한 문답을 나누면서부터다. 그래서 ‘도어스테핑’이라는 용어는 곧 ‘취재원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간단히 주고받는 문답/회견’을 일컫는 말처럼 알려졌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정확한 뜻일까? 이 말을 사용하는 기자들이 이런 의문을 품고서 국립국어원에 문의했다고 한다. 과연 지금의 취재 형식을 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우리말로 순화한다면 어떤 표현이 적절할까. 이번 새말모임 회의에서는 이 ‘도어스테핑’을 우리말로 다듬어 보기로 했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도어스테핑’은 “기자들이 인터뷰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문 앞에서 누군가를 부르거나 기다리는 행위”를 뜻한다.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취재원을 상대로 기자들이 기습적으로, 혹은 어느 정도 공격적으로 취하는 행동이라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우리 언론에서는 이를 속칭 ‘뻗치기’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부라사가리’(ぶらさがり·매달리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는 ‘도어스테핑’은 이와 거리가 있다. 행위의 주체가 ‘기자’가 아니라 ‘취재원’이다. 즉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취하는 언론과의 소통 방식을 가리킨다. 기사나 뉴스에서 쓴 예를 보더라도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 재개”라는 식으로 대통령을 주어로 삼아 쓴다. 원래 이 말이 비롯된 영어권에서 쓰는 용법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야말로 주객이 바뀌었다. 새말모임 위원들의 고민은 이 지점에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출근길 문답’이 무난한 대체어일 듯싶었다. 하지만 이 말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쓰임새가 담기는 것이 ‘필요’할지 모르나, 대체어로서 그 조건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원래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원뜻에 충실한 대체어를 찾아냈다. ‘문 앞 취재’가 그것이다. ‘취재’라는 단어에서 읽을 수 있듯 취재원보다는 기자를 행위의 주체로 놓은 표현이다. 이를 대체어 1순위로 올렸다. 그런데 ‘문 앞 취재’라는 표현으로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산 집무실 입구 풍경’을 떠올리기 어렵다. 무엇보다 취재원인 대통령이 보여 온 소통의 적극성을 잘 담고 있지 않은 표현이다. 그래서 취재원과 기자가 암묵적 합의로 질문과 대답을 적극적으로 주고받는 지금의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약식 문답’을 2순위 대체어로 올렸다. ‘약식 (기자)회견’이라는 표현도 검토됐으나, ‘회견’이라는 형식은 사전에 계획적으로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는 느낌이 있어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출근길 문답’은 3위 후보로 내려갔다. 시민들의 의견은 달랐다. 지금의 쓰임새에 충실하게 ‘출근길 문답’을 대체어로서 가장 선호한 것(75.8%)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뒤를 이어 ‘약식 문답’도 비슷한 선호도를 보였다. 반면 새말 위원들이 지지한 대체어 후보 ‘문 앞 취재’가 ‘적절하다’는 응답률은 1, 2위에 비해 선호도가 20% 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여론조사 과정에서 ‘도어스테핑’이 영어권에서는 원래 어떤 의미로 사용되며, 그래서 현재 우리 사회의 쓰임새가 이와는 얼마나 다른지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민들은 원뜻과 무관하게 ‘가장 익숙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하나의 외국어에 하나의 우리말 대체어를 제시하던 이전과 달리 ‘출근길 문답’과 ‘약식 문답’, 두 말을 대체어로 선정해 발표했다. 한편 ‘출근길 문답’이나 ‘약식 문답’으로 바꿔 부르기에는 너무 늦은 것 아닐까. 이미 우리 사회가 ‘도어스테핑’에 너무 많이 노출됐는데, 과연 대체어가 받아들여질까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실 매번 새말모임에서 고민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여론조사에서 뜻밖의 결과가 있었다.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 ‘도어스테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2000명의 응답자 중 ‘도어스테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 보았다”는 사람이 무려 44.7%나 됐다. 한 번 이상 들어 본 사람 중에서도 이를 ‘드물게’ 혹은 ‘매우 드물게’ 들어 보았다는 응답자가 66%였다. ‘말을 다듬기에는 이미 늦은 게 아닌가?’ 하고 염려할 때가 아니라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많이 남은 시점이었던 것이다. 특히 기자들이 먼저 이 용어의 쓰임새에 의구심을 가지고 국립국어원에 문의한 만큼 언론사에서 더 적극적으로 우리 새말 쓰기에 나서 줄 것을 기대해 본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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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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