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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쉬운 언어 정책

  • 등록일: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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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쉬운 언어 정책

이선영(이화여자고등학교 독일어·영어 교사), 이세민, 이소현(이화여고 2학년)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이래로 독일어가 독일인의 언어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를 만든 이들은, 우리에게는 동화 작가로 잘 알려진 언어학자 그림 형제(Gebrüder Grimm)라고 볼 수 있다. 그림 형제의 각별한 노력을 시작으로, 독일어를 전공한 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독일인들이 지금도 독일어를 갈고닦아 사용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려는 움직임은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들만의 전유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언어를 진정 소통을 위해 사용한다면, 바르고 쉬운 언어를 쓰는 것이 소통하고자 하는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배려일 것이다.

2006년부터 독일은 정부 주도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영어로 해석하면 easy language]‘라는 독일어 사용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쉬운 언어는 주로 공공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2014년에는 쉬운 언어 지침서를 발간해 쉬운 언어가 필요한 사회 구성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쉬운 언어를 널리 사용하기까지는 협회들의 공이 컸다. 1997년 학습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단체인 ‘사람 우선 네트워크’는 학습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쉬운 언어를 개발하고, 이를 교육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2006년 쉬운 언어 탄생과 함께 시작한 ‘쉬운 언어 네트워크’도 쉬운 언어로 글을 번역하거나 번역된 글을 검수하고 있다. 한편 ‘통합 유럽(Inclusion Europe)’의 독일 단체들은 쉬운 언어를 홍보하고, 국민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선거 지침을 마련하는 등 쉬운 언어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이렇게 독일 협회들의 노력과 연방 정부의 지원 덕분에 쉬운 언어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지방 정부는 관공서나 도서관 등에 쉬운 언어로 쓴 안내서를 비치하고, 주 의회 선거 공고를 쉬운 언어로 작성하며 쉬운 언어의 확산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잡지사 ‘브랜드 아인스(brand eins)’는 2016년부터 매달 정치인의 연설, 법률 문서와 투자자 정보 등의 복잡한 글을 쉬운 언어로 번역해 제공하고 있고, 방송국에서도 쉬운 언어로 된 방송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문적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쉬운 언어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힐데스하임 대학교에 설립된 ‘쉬운 언어 연구소’는 쉬운 언어를 연구하며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연구 결과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


그림 1. 독일 연방 정부 누리집(Die Bundesregierung, 2022.02.)그림 1. 독일 연방 정부 누리집(Die Bundesregierung, 2022.02.)

[그림 1]에서 보듯이처럼 독일 연방 정부 홈페이지의누리집 오른쪽 위에는 ‘쉬운 언어’라는 뜻의 “LEICHTE SPRACHE”라는 선택 단추가 있다. 이 단추를 누르면 쉬운 언어로 적힌 독일 연방 정부 누리집에 접속하게 된다.


그림 2. 독일 연방 정부 누리집과 쉬운 언어 설명창(2022.01.)그림 2. 독일 연방 정부 누리집과 쉬운 언어 설명창(2022.01.)

[그림 2]의 회색 영역 안에 누리집 설명이 쉬운 언어로 적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설명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해당 누리집의 목적과 사용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쉬운 언어 규칙을 적용해 설명하고 있다.

Informationen in Leichter Sprache 

쉬운 언어로 된 정보

Dies ist die Internet-Seite www.bundesregierung.de.

이곳은 인터넷 누리집 www.bundesregierung.de. 입니다.

Die Seite ist vom Bundes-Presse-Amt.

이 누리집은 정부 언론 부서에서 제공합니다. 

Hier finden Sie Informationen in Leichter Sprache.

여기서 당신은 쉬운 언어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Zum Beispiel zum Bundes-Kanzler und zur Bundes-Regierung.

예를 들어 연방 수상에 대해 그리고 연방 정부에 대해.

Wir informieren Sie über das Corona-Virus

우리는 당신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und über die Corona-Warn-App.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경고 앱에 대해.


독일에서 쉬운 언어를 도입하여 공공기관에서 널리 사용하기까지는 쉬운 언어 네트워크의 공이 컸다. 독일의 '쉬운 언어 네트워크(Netzwerk Leichte Sprache)'는 2006년부터 10년이 넘게 쉬운 언어 규칙을 세우고 정부의 주요 정책 관련 문서를 번역하고 검수하는 활동을 해왔다. 또 쉬운 언어 네트워크 누리집을 쉬운 언어로 제공한다. 영역별로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큰 크기의 사진을 함께 노출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림 3. 쉬운 언어 네트워크 누리집과 쉬운 언어 설명창(2022.01.)그림 3. 쉬운 언어 네트워크 누리집과 쉬운 언어 설명창(2022.01.)

정부 기관 외에, 독일 언론에서도 쉬운 언어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제잡지사 ’브랜드 아인스(brand eins)‘는 2016년 6월부터 매달 복잡한 글을 쉬운 언어로 바꾸어 쓰고 있다. 지금까지 변환한 기사는 정치인의 연설, 법률 기사 및 주식 관련 정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림 4. 브랜드 아인스(brand eins) 누리집과 쉬운 언어 설명창(2022.01.)그림 4. 브랜드 아인스(brand eins) 누리집과 쉬운 언어 설명창(2022.01.)

브랜드 아인스에서는 기자 한 명이 기사 변환 작업을 모두 담당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변환 규칙과 특징이 일정해서 혼란을 줄인다. 변환된 기사나 글은 매달 한 번씩 올라오고, 원문 기사와 변환된 글이 번갈아 가며 표시된다.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변환된 기사의 글씨는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이 누리집은 사람들의 관심사에 맞추어 일정한 주기로 쉬운 언어로 읽을거리를 만들어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상 언어와 글의 형식과 구성이 비슷하여 쉬운 언어 대상자들뿐만 아니라 일상 언어 독자층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쉬운 언어 사용 범위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쉬운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민관 양측에서 이렇게 활발한 이유는 독일 사회가 제2언어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다문화 사회라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언어 장벽 때문에 소외될 수 있는 불특정 대상을 위해 민관이 힘을 합쳐 제도적인 길을 터주었다는 것이 다문화 사회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이 크다. 그리고 쉬운 언어 사용에 특정한 변환 규칙, 즉 기준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본받을 만하다.

쉬운 언어의 사용이 정치적으로는 선거 참여율을 높이고,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더한 사회적 배려가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선영

이선영(교사)

  • 이화여자고등학교 독일어·영어 교사
  • 위 글은 이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이세민, 이소현 학생과 함께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