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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마이크로 투어리즘? 근거리 여행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이전에 가끔 쓰였던 용어가 시기적 상황 때문에 갑자기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마이크로 투어리즘’(micro tourism) 역시 그렇다. 코로나19 때문에 급부상한 용어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대형 관광지를 찾는 ‘매크로(macro) 투어리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이 소규모 단위로 멀지 않은 곳의 숨은 명소를 찾는 방식의 여행을 일컫는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으려고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가 늘어나는 등 외국 여행이 위축되고, 사람들 스스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유명 여행지 방문을 꺼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뜬’ 여행 방식이다. 비교적 가깝고 좁은 범위의 지역을 소규모 인원으로 여행하다 보니 ‘주마간산’식 관광이 아니라 현지의 소소한 볼거리를 밀착해 들여다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우리 언론에 처음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언제였을까.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최초의 기사는 2009년의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친환경적 생태 여행의 하나로 자전거 여행을 권장하기 위해 ‘느린 템포로 구석구석 둘러보는’ 방식을 제안하며 사용됐다. 하지만 이때 한 번 반짝 등장한 이후로 10년간은 드문드문 쓰였던 용어인데, 코로나 시대를 맞아 2020년부터 그 쓰임의 봇물이 터졌다. “감염자가 많은 지역의 자택에서 약간 떨어진 호텔과 여관에서 마이크로 투어리즘을 시험하는 직장인도 있다.”(중앙일보 2021년 12월), “비용이 더 싼 것은 물론 곁에 두고도 미처 몰랐던 고향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 … 짧은 이동 거리와 소소한 볼거리가 특징”(오비에스2020년 6월) 등의 기사가 그 예다. 혹은 “새로운 곳을 탐방하는 것을 선호하던 기존의 여행과 달리 친근하고 자신이 잘 아는 곳을 방문해 그 안에서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여행 스타일”(스포츠서울 2021년 4월) 을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여행 방식은 코로나 감염 위험을 줄이는 것은 물론 국내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용어다.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이라는 점 외에도 마음에 꺼려지는 바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7.2%가 이 말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대체어로서 가장 적합할까. 언론에서는 마이크로 투어리즘이라는 용어와 함께 ‘작은 여행’, ‘근거리 여행’ 등의 풀이를 덧붙여 쓰곤 했다. 더러는 여행의 성격이 지역의 숨어 있는 세세한 가치를 발굴한다는 뜻에서 ‘근거리 밀착 여행’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새말모임에서는 이들 중 ‘작은 여행’과 ‘근거리 여행’을 후보로 골랐고, ‘소소한 여행’도 덧붙였다. 여행의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려면 ‘밀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게 좋겠지만 간결한 표현을 위해 빼기로 했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이 선택한 다듬은 말 후보는 ‘근거리 여행’. 무려 84.2%가 이 용어에 손을 들어 주었다. 사실 영어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작은’이라는 표현이 더 말뜻에 가깝겠고, 가까운 거리를 여행한다는 의미 외에도 여행 단위가 소규모에, 소소한 즐길거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근거리’라는 표현은 품이 좁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에게는 이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가까운 거리’라는 특징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제는 집단면역력도 높아지고 감염률도 줄어드는 등 코로나19의 위세가 한풀 꺾인 듯 보인다. 외국 여행도 재개되고 각종 ‘대규모’ 여행상품이 다시 시장에 나오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새삼 발견하게 된 ‘근거리 여행’의 미덕은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근거리 여행’을 통해 가까운 지역에서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나만의 보물찾기를 즐겨 보자.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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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이중생활도, 두 집 살림도 아닌 두 지역살이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1990년대에 유럽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국내에 개봉됐다. 이렌 자코브가 주연한 이 영화는 두 개의 도시에 떨어져 살며 만나 본 적도 없는 두 여성이 같은 이름과 얼굴로,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의식하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원제 중 ‘더블 라이프’(Double Life)를 한국어로 ‘이중생활’이라 번역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사전상 뜻은 맞되 말의 사회적 쓰임이라는 맥락에서 봤을 때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말모임에서 검토한 것은 ‘더블 라이프’가 아닌 ‘듀얼 라이프’(dual life)였다. 역시 오해를 주기 십상인 용어다. 영어 사전에서 이 용어를 찾아보면 ‘이중생활’이라고 번역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중생활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 혹은 역할을 갖고 생활하는 복수 정체성을 뜻할 수도 있다. 실제 이 용어가 2000년 동아일보 기사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의사이자 인터넷 사업가로 살아가는 인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됐다. 하지만 역시 ‘이중인격자’, ‘이중성’ 등의 단어에 내포된 부정적 의미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검토한 ‘듀얼 라이프’는 그와는 다른 뜻이었다. 직업이나 역할이 아니라 거주지를 중심으로 쓰인 용어였다. 즉 ‘도시와 지방에 주거지를 마련하고, 두 곳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로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5년 경향신문 기사에서였는데, 이후에는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들어 인구 감소 문제로 고민하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수도권이나 대도시 인구를 흡수하고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생활 형태로 ‘듀얼 라이프’를 제안하기 시작하면서 사용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며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듀얼 라이프를 즐기는 시니어가 많다”(브라보마이라이프), “신도시 체험은 체류형 관광으로 신도시 일대가 듀얼 라이프에 매력적이라는 점을 알리고자 마련됐다”(아주경제), “도시 살면서 지방서 힐링…듀얼 라이프로 인구감소 돌파”(매일신문)(이상 2021년 11월 기사)와 같은 기사를 보면 듀얼 라이프의 의미나 목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영어에서는 이 같은 뜻을 나타내기 위해 ‘듀얼 라이프’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멀티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 혹은 ‘리빙 인 비트윈 플레이시스’(living in between places)라는 표현이 맞다. 철 따라 이주 지역을 바꾸는 계절노동자 혹은 추운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는 ‘시즈널 마이그런트’(seasonal migrant) 혹은 ‘스노 버드’(snow birds·눈 오는 추운 겨울에 이동하는 철새에 빗댄 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현재 쓰임새에 여러모로 부적합한 ‘듀얼 라이프’를 대신해 쓸 만한 우리말 표현은 적지 않다. 언론에서는 그간 ‘듀얼 라이프’를 우리말로 풀어 쓸 때 ‘두 지역살이(살기)’ 혹은 ‘복수 거점 생활’과 같은 표현을 덧붙였다. 새말모임 위원들은 그중 ‘복수 거점 생활’은 어려운 한자어를 열거했다는 점에서 탈락시키고 ‘두 지역살이’, 그리고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두 곳살이’를 우리말 후보로 다듬었다. 또 다른 비슷한 표현으로는 ‘두 집살이’도 가능하겠으나 부정적 의미를 담은 ‘두 집 살림’이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 외 꼽힌 단어로는 ‘겹살이’가 있었다. 삼겹살 음식점을 연상케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신선한 우리말 표현이라는 점에서 후보에 올렸다.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은 ‘두 지역살이’를 가장 적절한 우리말 표현으로 선택했다. 한편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 볼 때 ‘듀얼 라이프’라는 영어를 말 그대로 풀어 쓴 ‘이중생활’은 적절치 못한 대체어로 판단된다. 다만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도농 간 이중생활’이라는 표현도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이중생활’만 썼을 때보다는 두 지역에서 산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표현했기는 하나 앞서 인용한 신문 기사처럼 거주 지역 중 한 곳이 반드시 ‘농촌’은 아니며 지방 소도시 거주도 가능하므로 오롯이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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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로 나온 차 아니고 외관 개선만 이경은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사람은 자기 몸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머리칼과 눈썹이 가장 쉽고, 손톱 미용에서 이제는 쌍꺼풀을 넘어 얼굴 전체와 몸매까지 바꾼다. 인공 관절에 인공 장기도 나온다니 언젠가는 뇌까지 바꿀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증명하게 될까? 요즘은 사람의 넋(혼)이 바뀌는 설정까지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한다.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은 채 겉만 살짝 손대서 새 멋을 내는 일이 우리 외모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집이나 건물은 ‘리모델링, 리뉴얼’이라고 부르는 ‘새 단장’을 한다. 사용자가 물건을 새로 꾸미고 단장하기도 하지만, 생산자가 그렇게 하기도 한다. 기존 상품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주로 겉모습과 일부 기능을 개선해 새 상품처럼 내놓기도 하는데, 특히 자동차에서 이런 경우가 잦다. 집보다 더 오래 붙어 다니고 운전자의 멋과 품격을 대변하기도 하는 물건인지라 운전자에 따라 성능보다도 외관을 더 중요한 선택 요소로 삼는 상품이라서 그렇다. 자동차 업계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주로 자동차에서 외관이 일부 변경되고 선택 사항이 추가됨으로써 기존 모델과 달라지는 일’을 ‘페이스 리프트’(face lift)라고 부른다. 사람의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과 핵심 성능을 좌우하는 제어 장치들뿐만 아니라 외관까지 몽땅 새로 내놓는 ‘풀 체인지’(full change)의 반대 개념으로 쓰는 말이다. 주름살을 펴는 미용 성형술에서 쓰던 말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운전자의 얼굴과도 같은 자동차의 외관을 개선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번 새말모임이 다룬 말은 바로 ‘페이스 리프트’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서는 ‘페이스 리프트’를 ‘부분 변경’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풀 체인지’, 즉 ‘전체 변경’에 대비되는 말로 잡은 것이리라. 그런데 페이스 리프트에 들어 있는 가치 지향, 즉 ‘기존 것보다 더 좋게 보이도록 고친다’는 의미가 ‘변경’이라는 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변경’보다는 ‘개선’이라는 말이 의도를 잘 표현해 준다. 여기서 ‘부분’이라는 말도 ‘전체’에 대립하는 말이긴 하지만 ‘부분’의 범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페이스 리프트’라고 할 때, 개선하려는 부분은 주로 겉모습이다. ‘겉모습 개선’이 딱 맞는 의미이지만,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좀 덜하다. 겉모습을 뜻하는 말로 ‘외모’와 ‘외형’과 ‘외관’이 있는데, 이 가운데 외모는 주로 사람에게, 외형은 주로 사물에 사용한다. 외관은 사람과 사물 양쪽 모두에 사용하는 편이다. ‘외형’과 ‘외관’은 사전의 뜻풀이도 거의 같지만, 말빛으로는 ‘외관’이 훨씬 더 미적인 느낌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들도 페이스 리프트를 대신할 말로 새말모임에서 제안한 ‘부분 변경’, ‘외관 개선’, ‘새 멋’ 가운데 ‘외관 개선’을 뽑았다. 이제는 ‘페이스 리프트’ 대신 ‘외관 개선’이다. 아, 그런데 이 말을 성형에서 사용하면 마치 로봇에게 시술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나의 외국어도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로 번역되니 이럴 때는 영어사전에 나오는 ‘주름살 제거 수술’이라는 말을 쓰면 된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이경은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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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경은
- 등록일 :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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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부쉬맨? 최보기(작가, 서평가) ‘옴부즈만’이라고도 하고 ‘옴부즈맨’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오래전에 영화로 알려졌던 ‘부쉬맨’이란 단어가 연상이 됩니다. 서구 문물과 담쌓은 아프리카 부족에게 비행기 조종사가 공중에서 버린 콜라병이 떨어지자 신이 보낸 물건으로 인식하면서 벌어진 촌극(에피소드)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옴부즈맨(Ombudsman)은 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한 일종의 행정 감찰관 제도로써, 행정기관에 의해 침해받는 각종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3자 입장에서 신속·공정하게 조사·처리해 주는 보충적 국민권리 구제제도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옴부즈맨은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이 민간 전문가를 위촉해 시행하는 ‘행정감시인’ 제도를 말합니다. 공무원들의 부당한 행정을 감시하여, 방지하자는 취지입니다. 대부분 행정기관에서 생산하는 문서와 책자에 ‘옴부즈맨’은 아무런 의심 없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접하는 국민 중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제 추측이지만 아마도 1%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단어 자체로만 보면 ‘맨(man)’ 정도는 안다 해도 ‘옴부즈’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짐작마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공기관과 언론에서는 옴부즈맨이 이미 보통명사로 자리를 확실히 잡은 터라 현장의 실무 공무원이 이를 자의적으로 ‘행정감시인’ 등으로 순화해 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공무원들에게는 옴부즈맨이 이해가 더 빠르기 때문인데 상급자에게 ‘엉뚱한 단어’로 보고했다가는 괜한 꾸중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가 옴부즈맨 정책의 목적인데 그 용어가 가진 뜻이 어려워 오히려 ‘국민의 쉽게 알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모두가 ‘홈페이지’라고 부르던 것을 공공기관에서 ‘누리집’으로 바꾸어 부르는 최근의 현상을 보면, ‘옴부즈맨’이 ‘행정감시인’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림1. 여러 공공기관에서 '옴부즈만' 명칭을 활용하고 있다. (출처: 용인시/금융위원회 공식 블로그) ‘CI, BI’라는 광고업계 전문용어 역시 옴부즈맨 못지않게 혼란스럽습니다. 원래 CI(Corporation Identity)는 여러 가지 상품을 파는 기업의 이미지를 하나로 응축해 소비자들에게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 BI(Brand Identity)는 어떤 상품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광고 전문회사가 개발한 개념어이자 상품입니다. 상업 기업에 제공했던 이 서비스를 광고회사들이 공공기관까지 시장을 넓힌 결과 많은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도입했습니다. 문제는 기업과 성격이 많이 다른 공공기관에 동일 형식을 적용한 데다 사용자(공무원)들이 광고 전문가도 아니다 보니 ‘CI, BI’를 비롯해 ‘캐치프레이즈, 로고, 심볼, 비전’ 등 관련된 광고 전문용어들이 한마디로 ‘중구난방’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들의 개발은 일반 전문기업에 의뢰하므로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들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제 소견으로는 각 기관마다 광고학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자기 기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엄선한 후 ‘상징 깃발, 도시 상표, 시정 비전, 시정 구호’ 등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개념어를 붙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하고 있는 고유의 ‘나무, 꽃’ 등은 ‘시 상징 나무, 시 상징 꽃’ 등으로 대부분 이해하기 쉽게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들마저 어느 날 ‘시티 심볼 트리, 시티 심볼 플라워’로 쓰이지 않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여러 공공기관이 ‘워크숍(workshop)’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기관마다 ‘숍’의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워크숍, 세미나, 포럼, 브레인스토밍’ 같은 용어들도 ‘수련회, 연구발표회, 연구토론회, 좋은생각(아이디어)개발회’ 등으로 순화되길 희망해봅니다. 그림2.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책이지만, 말이 어려워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북칼럼 ‘최보기의 책보기’ 연재 서평가 저서 『내 인생의 무기』 『공무원 글쓰기』 『독한시간』 『박사성이 죽었다』 『놓치기 아까운 젊은 날의 책들』 『거금도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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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최보기
- 등록일 :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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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에 블라인드 하나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몇 년 전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람들과 전화로 옥신각신한 적이 있다. 그 기관에서 연행사 제목이 ‘배리어프리 플레이 그라운드’였던가 그랬다. 우연히 이 광고문을 보았는데, 솔직히 나로선 무슨 뜻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의미를 물어본 뒤 꼭 이렇게 영어로 행사 이름을 지어야했냐고 따졌다. 실무 담당자는 자신이 정한 이름이 아닌지라 난감해하는 목소리였다. 곧 이 기관에 공문을 보내 이런 외국어 남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왜 그렇게 사용했는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어떻게든 자기네의 용어 사용에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변명뿐이었다. 시각장애인인 내가 작성했던 다소 격앙된 전체 질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2019년 10월 25~26일에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 페스티벌’이라는 제목의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 행사는 우리 국민 누가 보더라도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고, 외국 장애인을 상대로 벌인 행사도 아닌 것으로 압니다. 1) 국어기본법 제14조 1항에서는 공문서를 작성할 때 공공기관 등은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을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국고를 지원받아 치른 행사에서 이런 식으로 외국어를 남용하여 외국어 능력이 낮은 장애인의 알 권리를 짓밟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이 행사 이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첫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본 행사의 이름인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문화예술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기획한 행사입니다. '외국어 능력이 낮은 장애인'이라는 관점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행사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장애인의 알 권리를 차별하려는 의도는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본 행사에서는 장애인 및 고령자 등 다양한 관람객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큰 활자, 수어통역, 음성 해설, 휠체어 접근 등의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하였습니다.” 물론 차별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런 반응은 접근성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일까? 장애인의 접근성, 아니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의 ’접근성‘까지 고려한다면 그것은 몸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 이전에 말과 글로 알리고 설명하였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접근성이 먼저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이 일단 장벽일 텐데, 그런 언어 장벽을 세워두고 접근성을 말한다는 건 접근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반증 아닐까? 둘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다. “본 행사명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며 대체 표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배리어프리] 라는 단어가 '장벽 제거 또는 완화'로 표기될 수 있지만, 장애인•비장애인을 떠나 사회적 약자의 사회 참여를 도모하는 의미로 한글 표기보다 사회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예술경험을 통해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낮추고자 한 행사 의도와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진짜로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을까? 이들의 이런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한글문화연대에서 2020년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배리어프리‘라는 말의 국민 평균이해도는 18%, 70세 이상 평균 이해도는 4%에 불과하다. 심지어 나는 장애인문화예술원 외에도 장애인인권재단에서 대학교수들을 동원하여 라디오 광고를 하며 ‘배리어프리’라는 말을 홍보하는 것까지 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장애인은 물론이요, 비장애인들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니 예산을 들여 계속 홍보할 밖에. 해당 분야 학자나 전문가들이 자기들끼리 자주 사용하는 말인지라 사회적으로 널리 쓰인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리라. 나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직원들이 질문의 핵심을 피하여 그 언저리를 붙잡고 답하는 걸 볼 때마다 이들의 국어 능력이 뛰어난 것일까 처지는 것일까 혼란스럽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참 드물다. 이들의 의식은 왜 이렇게 흘러갈까? 난 두 가지 추정을 했다. 첫째, 본인이 장애인이 아니고 장애인 단체에서 실무를 맡아보는 사람이기에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둘째, 본인이 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이라는 피해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이를 덮어버리기 위해 애써 영어를 써서 비장애인처럼 보이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지 어떤지 사실 여부는 나도 모르겠지만. 과연 ‘장벽 없는 세상’을 향한 장애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소망은 ‘배리어프리’라는 말로밖에는 설명되거나 가리켜질 수 없는 것이었을까? 나는 중고교 시절에 영어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던지라 어느 정도 어휘는 기억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평소에 영어로 말하고 글을 쓰고 들을 기회가 별로 없으니 기억나지 않는 단어들이 이제는 많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대체로 그렇지 않겠는가? 장애 당사자로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비행기로 부산에 가려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는데 길이 막혀서 좀 늦었다. 허겁지겁 표를 받은 뒤 항공사 직원에게 내가 비행기 타러 가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곧 이 분이 무전기로 직원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런 말이 들려왔다. “블라인드 하나. 블라인드 하나.” 순간, 저 말이 나를 가리키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왜 평범하게 ‘시각장애 한 사람’, ‘시각장애인 한 분’ 정도로 불리지 못하고 무슨 암호 코드처럼 ‘블라인드’로 지칭되어 단위마저 ‘하나’로 세어져야 할까? 아무에게도 부여하지 않는 이런 지칭은 나를 이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 자리에서 배제한다는 느낌으로 몰아갔고, 세상 사람들 앞에 홀로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부끄러움 같은 걸 의식하게 했었다. 사실 나는 굉장히 뻔뻔한 편인데도 말이다. 내가 우리 주변에서 사용하는 우리말로 불리지 않는다는 건 내가 이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의 존엄은 평등하지만 세상이 평등하지 않듯이, 언어능력은 타고난다고 하지만 그렇게 타고나지 못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시각, 청각, 인지 등 여러 분야의 장애가 선천적으로 또는 질병과 사고 때문에 생겨서. 물론 가정과 사회의 돌봄이 없거나 부족하여 그리되는 경우도 있다. 제나라 말이 그럴진대, 외국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경향적으로 장애인들에게는 새로운 정보, 특히 학습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터득하는 데에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외국어 학습에서도 당연히 이런 장애물이 있다. 외국어 사용 환경에 접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다. 어떤 어휘는 외국의 사회 제도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라 그런 장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내가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를 활용하면서 처음 만났던 암초가 바로 ‘바우처’라는 말이었다. 이 제도를 설명해주는 사회복지사가 바우처 어쩌고 하는데,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이게 뭐, 복잡한 제도인가 뭔가... 사실, 바우처는 ‘이용권’ 정도로 간단명료하게 번역하여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 분야와 복지 분야 등에서 전문가들이 거르지 않고 그냥 바우처라고 쓰다 보니 지금은 농식품바우처까지 나오고 있다. 농식품바우처는 생활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제공되는 것인데, 이를 ‘농식품이용권’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쉽고 이해가 빠르겠는가? 공무원들은 민원인에게 두세 번 설명해줘야 하고, 이용자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말이면서도 알아듣는 것처럼 모래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야 하니, 참으로 자존감 무너지는 상황이다. 말은 그저 무미건조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사회적 관계가 그 말을 매개로 작동하면서 차별과 배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언어 능력의 면에서 어떻게든 소외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끌어안으려는 공동체 의식,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첫걸음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쓰는 태도이다. * 이 글은 한국어문기자협회 <말과글> 172호에도 실렸습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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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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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가상 모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판박이 세상 이경은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대형 건물이나 미술관 같은 곳에 가면 작은 모형으로 건물 전체를 조감해 놓은 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모형’이란 실물을 모방해 만든 물건이나 작품을 만들기 전에 미리 만든 본보기 같은 것이라서 우리는 그 모형을 통해 건물 전체의 구조를 한눈에 파악한다. 전쟁 영화나 공상과학 영화에서도 실물 촬영이 어려운 장면을 찍을 때 많이 쓴다. 실제 부엌과 크기만 약간 작을 뿐 거의 비슷한 ‘모형 부엌’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이런 모형을 가지고 미리 체험해 보면서 자기 미래의 삶을 배워 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모형은 이미 익숙한 생활 환경이다. 그런데 이 모형이 실물 세계에서 컴퓨터 가상세계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디지털 트윈은 현실 속의 어떤 사물과 똑같은 쌍둥이를 컴퓨터 가상세계 속에 만들고,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모의 실험해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2010년에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우주선의 물리 모델을 위해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한 것이 최초이며, 이후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제조업에 디지털 트윈을 적용하면서 용어가 확산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토교통부와 한국국토정보공사가 한국판 뉴딜 발표를 계기로 올해 처음 시작하는 ‘디지털 트윈 국토’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국토를 실제와 같게 3차원 가상세계로 구현해 지능형 국토 관리와 국민 삶에 맞춘 문제 해결을 꾀한다는 것이다. 제조업만이 아니라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 기술이 사용되니 이 용어도 자주 등장한다. 영어권에서는 ‘트윈’을 반드시 사람이나 동물에게만 쓰는 건 아니지만, 우리말에서 ‘쌍둥이’는 주로 사람이나 동물에 한정해 쓰는 어감이 있다. 그래서 새말모임에서도 직접적 번역어인 ‘디지털 쌍둥이’보다는 ‘디지털 복제’가 제안됐다. 복제란 원형 그대로의 것을 재생해 표현하거나 본디의 것과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이 어떤 경우에는 숫자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를 가리키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가상’의 뜻이 강하므로 ‘가상 복제’라는 말을 대체어로 생각할 수 있다. ‘복제’와 비슷한 말로, 판에 박은 듯이 매우 비슷하게 닮은 사람을 뜻하는 ‘판박이’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복제’라는 용어만으로는 ‘디지털 트윈’에서 구현하려는 기술이나 기능의 핵심, 즉 미리 모의 실험하기 위해 디지털 환경을 이용한다는 점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이에 잘 맞는 말이 바로 ‘모형’이다. 모형은 ‘실물을 모방해 만든 물건이나 미술 작품을 만들기 전에 미리 만든 본보기 또는 완성된 작품을 줄여서 만든 본보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새말모임 위원들은 ‘디지털 트윈’을 대신할 말로 ‘가상 모형, 가상 판박이, 가상 복제’ 등의 세 후보를 내놓았다. 국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6%가 ‘디지털 트윈’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했으며, 90.7%가 ‘가상 모형’으로 바꾸는 게 적절하다고 답했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이경은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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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고물가 경기침체’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경기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진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불황 중에도 물가가 계속 오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영국 정치가 이언 매클러드가 1965년 영국 의회의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1970년도에 신문 기사에서 소개됐다. 당시 경향신문 기사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영국의 매스컴에서는 영국 경제의 현실과 병폐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신어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낱말이다. 이 낱말은 (중략) 영국 경제의 현실이 불경기의 상황 아래에서도 임금과 물가등귀가 심각하대서 생겨난 것이다.” ‘영국의 병폐’ 때문에 생겨났다는 ‘신어’ 스태그플레이션이 7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까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이른바 ‘오일 쇼크’라 불린 세계 유가 폭등 때문이었다. 전 세계가 치솟은 기름값 때문에 호된 불황과 물가 상승에 시달렸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 우리 경제에 깜빡이는 위기 신호 때문에 이 용어가 다시 언론에 자주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해 왔을까.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 뒤에 괄호를 붙여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고물가 속 경기 불황’이라고 나란히 쓴 경우도 있고,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 ‘경기 침체와 고물가가 동시에 닥치는 스태그플레이션’처럼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한 사례도 많다. 한편 스태그플레이션이 워낙 보편화되고 독자들에게 익숙한 용어라고 판단한 탓인지 일부 경제 전문지들에서는 아예 별도의 우리말 설명을 붙이지 않고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말로 풀어 쓴 용례가 많고 말뜻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용어인 만큼 이를 다듬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새말을 지어 낼 열쇳말은 두 갈래.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고물가’와 ‘물가 상승’이 한 갈래이고, ‘스태그네이션’을 뜻하는 ‘경기침체’와 ‘불황’, ‘불경기’가 또 다른 갈래다. 새말모임 회의에서는 이 두 갈래 말들을 여러 방법으로 조합해 보며 가장 적절하다 싶은 세 개의 후보를 만들었으니 ‘고물가 경기침체’, ‘불경기 물가 상승’, ‘고물가 불황’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여론조사를 거쳐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고물가 경기침체’가 새로운 우리말로 결정됐다. 우리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어떻게 표기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영어권 신조어가 들어오면 일본어로 바꾸어 표기하는 것보다 가타카나를 이용해 외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스태그플레이션 역시 가타카나로 표기(스다구후레-숀·スタグフレ?ション)할 뿐 일본어 표현이 따로 없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도 마찬가지인데, 일본 특유의 ‘줄임말 선호’로 ‘인후레’, ‘디후레’라고 줄여서 부르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신문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불황 속의 인플레’라고 표현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중국은 발음을 따르기보다 신조어의 뜻을 살려서 한자어로 바꿔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을 ‘수쯔’(数字) 혹은 ‘수마’(数码)로 바꿔 쓰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역시 ‘정체하다’는 뜻의 ‘즈’(滞)와 ‘팽창하다’는 뜻의 ‘장’(胀)을 조합해 ‘즈장’(滞胀)이라고 바꿔 표현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어로 인플레이션은 ‘통화팽창’, 스태그네이션은 ‘불경기’라고 하며, ‘萧条’(샤오탸오)라고 표기한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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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노마드 워커? 유목민형 노동자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디지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장소나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들이 속속 등장했다. 디지털 노마드, 잡(job) 노마드, 유로(Euro) 노마드, 노마드 워커 등이 그것이다. 표현은 여러 가지지만 사실은 대부분 같은 뜻이다. 그중에서 이번 새말모임은 ‘노마드 워커’(nomad worker)를 택해 우리말로 다듬어 보았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도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있었다. ‘자유 계약직’ 혹은 ‘프리랜서’ 등이다. 하지만 ‘노마드’라는 말이 붙음으로써 기존 자유직의 성격에 노트북 컴퓨터나 태블릿 기기, 휴대전화 같은 휴대용 기기를 이용한다는 ‘디지털 시대적 특징’이 한층 더해졌다. ‘노마드’라는 단어 자체는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유목민’이란 뜻의 라틴어라고 하니 연륜이 퍽 길다. 이 오래된 단어가 철학적 용어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누리는 새로운 인류를 가리키며 ‘노마디즘’이라는 말을 쓰면서부터다. 그러다 30여년 전 마셜 매클루언이 “인류는 빠르게 움직이며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라고 미래를 진단하면서 ‘노마드=디지털 유목민’의 뜻으로 점차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미 ‘디지털 노마드’나 ‘잡 노마드’라는 용어는 우리 언론에 2000년대 초반 등장했고, ‘노마드 워커’는 그보다 한 발짝 늦은 2010년 서울경제 기사에서 처음 발견된다. 최근 들어서 ‘노마드 워커’라는 용어는 더욱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노마드 워커 교육은 전국 최초로 시행되는 창조경제 프로젝트로 최첨단 디지털 시스템을 활용,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아시아투데이), “노마드 워커를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모바일 보헤미안은 거기에 더하여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없어진 상태’를 가리킨다.”(문화뉴스) 등이 그 사용 사례다. 앞선 글에서 같은 한자 문화권 나라들인 한국, 일본, 중국이 알파벳 언어권에서 들어온 신조어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했는데, ‘노마드’의 경우는 세 나라가 모두 똑같이 ‘유목민’이라고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遊’자를 사용하는 반면 중국에서는 ‘游’로 표기하는 게 차이다). 또한 국립국어원에서도 ‘디지털 노마드’를 ‘디지털 유목민’으로 다듬어 발표한 바 있기에 ‘노마드’라는 단어는 ‘유목’ 혹은 ‘유목민’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겠다. 다만 ‘노마드’는 명사지만 맥락상 형용사형을 사용하는 게 맞겠고, 영어권에서도 형용사형인 ‘노마딕(nomadic) 워커’ 혹은 ‘디지털 워킹(working) 노마드’라고 쓰기 때문에 새말 역시 유목‘형’ 혹은 유목민‘형’ 등 형용사형으로 다듬었다. 그렇다면 ‘워커’의 대체어로는 ‘근로자’와 ‘노동자’ 중 무엇이 적절할까. 현재 우리나라 노동 관련 법규에는 ‘근로기준법’ ‘근로자보호입법’과 같이 ‘근로’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고, 법정기념일인 5월 1일 역시 ‘근로자의 날’이 공식 명칭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근로자’라는 명칭 사용에 비판적이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근로자(勤勞者)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부나 사측이 사회주의 계열에서 주로 사용하는 ‘노동자’라는 단어 대신 의도적으로 선택한 용어라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5월 1일도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메이데이’(May Day) 혹은 ‘노동절’이라고 부른다. 새말모임에서는 다양한 시각을 고려해 ‘노동자’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000명 중 62.2%가 ‘노마드 워커’를 쉬운 우리말로 바꿀 것을 원했고, 후보 낱말 중 ‘유목민형 노동자’가 57.6%의 지지를 받고 새말로 선정됐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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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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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상용도시 부산의 한글날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한국어 단일 언어에 익히기 쉬운 글자 한글을 사용하다 보니 편하게 사는 걸 모르고 허황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 여러모로 억울하다는 열패감에 빠져 어떻게든 영어로 사회 발전의 길을 터보겠다는 야심을 지닌 자들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다민족 다언어 사회와 비교해 우리의 말글살이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인지 모르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경쟁력’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재려 한다. 1990년대 말에 영어를 공용어로 정하자는 주장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을 영어상용도시로 만들어 ‘글로벌 허브 도시’로 우뚝 세우겠다고 한다.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발상인데, 그러면 지금까지 한국은 어떤 경쟁력으로 여기까지 왔단 말일까? ‘상용’이란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으로서,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의 주요 민족인 ‘앵글로-색슨’에 대해 사전에서는 ‘영어를 상용하는 국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상 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 공공기관에서든 영어를 늘 사용하는 것이 바로 상용이다. 한국은 ‘한국어를 상용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부산을 ‘일상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니…. 부산시는 단어의 개념조차 잘못 이해하고 있다. “시의 영어 상용화 정책은 영어를 의무적으로 쓰는 공용화가 아니라 영어를 많은 시민이 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넓히는 방향”이라고 부산시는 설명한다. 공용은 의무이고, 상용은 의무 아니니 겁먹지 말라는 투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심각한 착각이다. 공용어란 ‘한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인데, 이 공용어 사용의 ‘의무’는 공공기관에 부과되는 것이지 결코 시민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공공기관에서는 국민이 공적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보장하고 공적 업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도록 공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처럼 공용어가 한국어 하나인 나라에서는 공공기관에서 한국어를 써야지 외국어를 쓰면 안 된다. 싱가포르처럼 공용어가 4개인 다민족 다언어 국가에서는 공공기관에서 네 개의 공용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 어떤 말을 쓰는 국민이든 공적 정보를 얻고 공적 용무를 처리할 수 있게끔 보장한다. 싱가포르의 공용어가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네 가지라고 해서 거기 국민들이 네 개의 언어를 모두 사용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게 결코 아니다. 공용어 사용의 의무는 공공기관에서 지는 것이다. 공용어 사용 의무에 대한 오해도 그렇지만, 부산시의 생각과 달리 ‘공용어’보다도 ‘상용어’가 시민에게 더 강압적이고 의무적일 수 있다. 정책 당국자의 정책 의도가 개입되어 강제적으로 추진될 때 그렇다. 1910년 강점 뒤 일제는 조선 땅에서 모든 행정 문서와 법률 문서, 조선어과목을 제외한 교과서를 일본어로 작성했다. 공직 관리들에게 업무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의무였다. 부산시 용법대로 하면, 이게 바로 ‘일본어 공용’이다. 그러다 일제는 1938년부터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전쟁 동원을 위해 일본어 교육을 대단히 강화하고, 1942년부터는 ‘일본어 상용’을 민간의 운동으로 펼치는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식민지의 국어는 일본어였으니, 이를 ‘국어상용운동’이라고 불렀다. 모든 조선어교육은 폐지되고 관공서는 물론이요 학교와 거리, 가정에서조차 일본어를 쓰도록 했다. 조선어를 쓰면 벌금을 물리고 가족 간에도 신고를 장려했다.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친 이 시기가 바로 ‘일본어 상용’ 시대이니, 공용보다도 상용이 더 폭력적이고 전면적이었던 것이다. 부산시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하려 애쓰면서 이런 정책을 내놓은 속내는 짐작이 간다. 시민들이 늘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외국인 손님맞이에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여기가 정말 국제적인 도시라고 어깨에 힘을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이야말로 모기 잡으려고 아파트 불지르는 꼴이다. 일제의 총칼로도 쉽지 않았던 것이 외국어를 상용하게 하는 일이었다. 일제 36년으로도 모자랐으니, 싱가포르처럼 100년은 넘게 식민지 생활을 해야 가능해질 일이리라. 부산시가 원하는 게 이런 강압적인 영어상용인가? 필자가 보기엔, 일반 시민의 영어 능력을 잣대로 국제 도시인지 어떤지 도시 수준을 평가하려는 발상부터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보고 싶은 게 한국어 쓰는 한국인들의 문화이지, 어설프게 영어로 대접하려 안간힘 쓰는 안쓰러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만일 부산시의 ‘영어상용’이 영어 잘하는 시민들 좀 늘리자는 정책이라면 ‘상용’과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부터 버려야 한다. ‘영어 잘하는 시민 늘리기’ 정책으로 이름을 바꾸되, 다른 지자체에서 이미 실패로 끝난 영어마을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예산을 낭비해선 안 된다. 철저히 학생과 시민의 자발적 수요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또한 강제로 영어를 상용하게 할 게 아니라면, 전국에서 가장 영어남용이 심한 부산시의 공공언어 사용 풍토부터 고쳐야 한다. 마린시티, 에코델타시티, 문탠로드 등 지역 이름을 영어로 짓는 도시는 부산밖에 없다. 물론 부산시민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저지른 일이지만.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정책 이름과 행사 이름, 공공시설 이름, 공문서 용어에 영어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곳도 부산시청이다. 이런 곳에서 ‘영어상용’을 외치니, 이는 시민의 알 권리 침해이고, 우리말글 억압이며, 한류 죽이기 정책으로 치달을 것이 뻔하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의도는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자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맞닿아 있는 ‘언어 인권 의식’이다. 한문시대, 국한문혼용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한글전용 시대,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시대이다. 그 한글과 단일언어 한국어로 소통이 너무도 편했던 우리 사회에 박 시장이 불통과 차별의 높은 벽을 세우고 있다. 쓸 일이 있어서 영어 공부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꼭 필요한 사정이 아님에도 우리 일상 생활에 영어를 들여오려는 이상한 노력들이다. 영어상용도시 부산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망 아래 부산시민들은 한글날을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다. *이 글은 주간한국에 실렸습니다. (http://week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7074364)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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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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