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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우리말 쓰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 우리말을 영어보다 우선하자(우영우 하자!) 인천예일고등학교 교장, 박말선 해가 갈수록 거리에는 외국어 간판은 늘어가고 있다. 강남이나 홍대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외국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영어 간판이 즐비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영어 간판이 한두 개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백화점 안의 대부분의 상점이 영어 간판으로 바뀌었고, 거리의 가게들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영어나 이태리어, 불어, 일본어 등의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이 영어 간판이다. 나는 우리말 없이 영어만으로 표시한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며 일부러 백화점 여종업원에게 이 간판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같이 다니던 우리 딸은 기겁을 할 듯이 엄마는 왜 그러느냐고, 창피하다고, 그리고 그 종업원이 그 영어를 썼냐고 나를 나무랐다. 영어 간판에 대해 따지려면 사장에게 따져야지 종업원이 무슨 죄냐는 뜻이다. 내가 사장을 만날 수 없으니 가게에 있는 아가씨에게 얘기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나처럼 여러 사람이 영어 간판이 불편하다고 말한다면 사장에게 전해 주겠지라며 나도 지지 않는다. 계속 그러면 앞으로 엄마랑 쇼핑 다니지 않을 거라고 딸이 쐐기를 박는다. 그렇게 딸과의 입씨름은 일단락되고 애들과 외출할 때에는 기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외국어 간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에 와서 왜 영어만으로 되어있는 간판을 쓰면 안 되는지 얘기를 했다. 우선, 간판, 상호명, 상품명, 거리 표지판 등을 영어만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우리나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환갑이 지난 나는 다행히 전공이 영어여서 영어 간판을 읽을 수 있다. 내 나이대의 어른들은 여전히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시골 노인들이 서울에 왔을 때 느낄 당황함과 낯섦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복잡한 거리, 빵빵거리며 질주하는 수많은 차량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마천루, 처음 타보는 전철, 우리말 간판과 표지판으로 되어 있어도 목적지를 쉽게 찾아가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알 수 없는 외국어만 즐비하니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푸대접을 받는 상황이다.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아파트 이름을 영어로 지었더니 영어를 아는 시누이까지 데리고 와서 더 괴로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우스갯소리를 들어보시라. 시골 할머니가 서울역에서 화장실이 급해서 서둘러 들어간 곳이 남자 화장실이었다. 당황하여 다급하게 나와서 맞은편 여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겨우 보았다. 집에 가서 손녀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손녀가 알려주기를 ‘할머니, 다음부터는 길게 써놓은 곳으로 가세요’라고 했다. Man보다 Woman이 글자가 더 길기 때문에 긴 쪽으로 가라고 일러준 것이다. 다음에 그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남자 화장실로 가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Lady, Gentleman이라고 쓰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영어로만 간판을 쓴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이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일이다. 영어로만 간판을 쓰면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자존심의 문제이다. 한번은 영어원어민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너희 한국 사람들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세종대왕이라면서 왜 온통 영어만 쓰냐고.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다가 외국인을 배려하는 차원이기도 하고 영어를 더 적극적으로 배워보려고 하다 보니 그렇다고 얼버무렸지만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영어 교사인 나는 영어가 강조되던 이명박 정부 시절,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동안 3주간의 숙박 영어 캠프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학생들은 모두 영어 이름을 지어 사용했다. 영어식 사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영어 캠프였으니 그때로서는 너무나 당연했었다. 그런데 캠프가 끝나고 바깥에서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 애들의 한국 이름을 하나도 모르는 게 아닌가. 또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에 가면 1~2년 살다 오더라도 이름을 영어로 바꾼다. 아니 심지어는 한국에 있어도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사는 미국 사람들도 그런가? 한국에 사는 동남아 사람들, 아랍권 사람들이 다 한국 이름으로 바꾸는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조상님들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가. 물론 창씨개명과 지금의 영어 이름 사용과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런 한글을 두고 영어로만 간판을 내거는 것은 재고해봐야 할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BTS를 비롯한 K-팝 가수들의 활약과 기생충, 미나리와 같은 영화계의 쾌거, 우리의 경제적 발전 등을 생각해보면 더 이상 미국을 무작정 동경하고 따르던 시절은 지났다고 생각한다. K-푸드, K-팝 등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영어만을 사용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다. 한강 작가가 우리글로 노벨상을 받은 지금, K-랭귀지인 한글을 우선 써야 하지 않을까? 영어를 쓰면 뭔가 유식해 보이고, 시쳇말로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리 잡은 언어 사대는 아닐까.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고 나를 국수주의자로 오해는 마시라. 글로벌 시대에 어찌 영어를 쓰지 않고 살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유창한 영어로 강의도 하고 토론도 하고, 외국인과 대화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무분별한 영어 사용을 지양하고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주자는 것이 나의 요지이다. 한때 나도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 바꾸어 쓰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기에 우리 사회가 너무 많이 나아갔다. 그러니 한발 물러나서 영어로만 표기하지 말고 우리말과 함께 쓰자는 것이다. 우리말과 함께 쓸 때에는 우리말을 영어보다 우선적으로 쓰자(한영 병기, 우영우)는 뜻이다. 우리말이 있으면 우리말을 쓰고, 미처 우리말로 바꾸지 못해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발음 나는 대로 우리말로 적어주고 그 뒤에 영어를 쓰자는 뜻이다. 즉, 우리말 먼저 영어는 뒤에, 우리말 크게 영어는 작게, 우리말은 왼쪽에 영어는 오른쪽에 쓰자는 말이다. 우리말을 영어보다 우선하자(우영우하자)는 말이다. 박말선 인천예일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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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우리말 쓰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 이강은 기자 세계일보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이강은 평소 기사를 쓸 때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사실 관계가 맞는지, 뜻이 적절하고 어렵지 않은 단어를 쓴 건지, 띄어쓰기는 이상 없는지, 글이 매끄럽고 쉽게 읽히는지 따지면서 쓰기 때문이다. 이런 버릇이 든 데는 25년 전 수습기자 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사회부장의 한마디가 컸다. ‘중학교 2학년이 신문을 봐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떤 독자든 어려움 없이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쓰라는 조언이었다. 그리하려고 항상 온라인 국어사전과 검색창 도움을 받아가며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어문화원연합회가 진행하는 ‘매체와 함께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에 참여한 지난해부터 기사 작성 시간이 더 길어졌다. 이 사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언론 등 공공(성) 기관이 사용하는 ‘공공언어’를 쉬운 우리말로 쓰도록 하자는 게 취지다. 공공 정보를 파악하는 게 어려워 소외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물 같은 우리말이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력을 지니도록 찾아 쓰자’는 의미를 담아 ‘우리말 화수분’(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연재를 하면서 기사 작성에 더욱 신중해졌다. 그동안 독자 누구나 무슨 내용인지, 기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등 기사 내용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써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부족한 점을 적잖이 느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거라 자연스레 썼던 외국어도 가급적 쉬운 우리말 표현을 찾아 대체하고 있다. 외국어를 적당한 우리말 표현으로 바꿔주는 ‘쉬운 우리말 사전’이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불필요한 외래어와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에게 낯선 한자어 사용도 지양하고 있다. 지금 맡고 있는 공연 예술 분야의 경우 연극·클래식·국악·발레·뮤지컬·무용 등 장르별로 애호가들만 아는 용어가 많은데 일반인도 쉽게 이해하고 예술 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풀어서 소개하는 편이다. 국어는 한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드는 외국어와 국적 불명의 신조어, 줄임말 등에 치이고 있다. 특히 국민 누구나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할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의 그늘도 짙다. 예컨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내년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 문화예술인 주제 근현대사콜로키움을 개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최근 냈다. 콜로키움 대신 토론회나 대담이라고 하면 될 걸 아는 사람만 아는 콜로키움이란 외국어를 썼다. 다른 공공기관의 정책 홍보·행사 관련 보도자료나 안내문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협력이나 협업을 ‘컬래버레이션(컬래버, 콜라보)’으로, 사회자나 진행자를 ‘모더레이터’라고 하는 식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정책 홍보를 어려운 말로 하면 정책 인지도와 호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생명과 안전, 권리 보호 등에 관한 중요한 사안은 누구나 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공공언어를 전달하는 각종 언론매체가 자료에 있는 불친절한 표현을 그대로 옮기거나, 소수만 아는 외국어나 전문용어를 언급하면서 그 뜻이 무엇인지 소개하지 않은 기사를 내는 것도 문제다. 심지어 기자가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쓴 건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아리송한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공공언어를 기록하고 알리는 책무를 부여받은 기자와 매체라면 최소화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런 면에서 언론은 물론 공공기관 안팎에 미치는 효과가 적지 않았으나 예산이 삭감돼 폐지된 ‘매체와 함께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을 복원했으면 한다. “공공언어를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꿔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공적 가치를 높일 경우 연간 3375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현대경제연구원)는 연구 결과도 있잖은가. 공공언어를 중심으로 우리말을 쉽고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2005년 시행된 국어기본법과 국어 정책 등 틀 자체는 괜찮은 것 같다. 다만, 그런 제도와 정책이 공공기관 등 사회 전반에 제대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여건이 미흡한 실정이다. 문체부 지정 사단법인으로 지역민의 올바른 국어문화 생활을 돕고, 지자체와 주민들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교육·상담·연구·정책과제 시행 등 활동을 하는 국어문화원만 해도 그렇다. 전국 광역시·도에 20여군데 있는 국어문화원 한 곳당 연간 운영 예산이 2000만∼2500만원에 불과하다. 석·박사급 상근 연구원 한 명의 인건비도 감당할 수 없어서 외부 에서 맡긴 연구 사업을 많이 따내야 하는 등 운영 예산 확보 압박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세대별 문해력 차이에 따른 소통 단절도 심각해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을 노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사흘’이나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세대 갈등이 심상찮은데 언어 소통까지 삐걱거려 ‘불통 사회’가 될까 걱정이다. 국어의 지위가 더이상 위태로워지지 않도록 하고 쉬운 우리말과 글 쓰기를 활성화하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이강은 세계일보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이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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