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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에이지리스’는 ‘나이 무관’으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그동안 새말모임 위원들의 활약과 노고에 중점을 둔 기사를 쓰면서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다듬을 말 후보들을 선정하고, 그 후보군이 언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용례와 뜻풀이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기초 자료를 꼼꼼히 조사해서 위원들에게 전해 주는 국립국어원의 노고가 빠져 있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국립국어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전 또는 사후 조율을 통해서 국민수용도 조사를 한다. 이후 조사 결과를 참고해 다듬은 말을 선정한 뒤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발표하고 있다. 4월 새말모임에서 다루고자 제안한 용어는 스터디 투어(study tour),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헝거 마케팅(hunger marketing), 에이지리스(ageless), 안테나 숍(antenna shop), 리추얼 라이프(ritual life), 캠테리어(camterior)였다. 뜻을 짐작할 만한 용어도 있었지만, 역시 생소한 용어들이었다. 이 중에서 새말모임의 위원들이 다듬고자 고른 용어는 무엇이었을까? 위원들도 어떤 때는 다듬기 쉬운 말을 고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한 위원은 다듬기 쉬울 것 같다는 이유로 ‘스터디 투어’를 다루자고 제안했지만, 상황은 그리 뜻대로 펼쳐지지는 않았다. 논의 끝에 고른 첫 번째 용어는 ‘에이지리스’였다. 에이지(age)는 ‘나이’고 ‘리스’(lease)는 ‘빌린다’는 뜻이니 나이를 빌린다는 뜻인가 싶었는데, 원어를 제대로 보니 ‘-이 없는, -의 영향을 받지 않는’의 뜻인 접미사 ‘리스’(-less)였다. ‘어떠한 선택에서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에이지리스의 의미라고 한다. 패션에서 성별 구별 없이 착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젠더리스’와 비슷한 용어인 듯하다. 신문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용례로 사용되고 있었다. “과거보다 젊은 중장년층인 이들은 연령 구분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에이지리스’ 패션을 선호하는데…”(서울경제 2022년 1월) “에이지리스는 뷰티 시장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층에서도 건강하고 탄력 있는 피부를 유지하는 안티에이징 케어에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메디컬 투데이. 2022년 4월) 우리말 후보로 첫 제안은 ‘나이 불문’이었는데, ‘나이에 대한 관념이나 구별을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나이 파괴’가 제시되기도 했다. ‘나이 파괴’가 더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이 될 것 같다는 이유였다. 또 나이를 무시한다는 의미에서 ‘나이 무시’, 연령을 초월하거나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초연령’, ‘탈연령’도 제시됐다. ‘나이야 가라’라는 재미있는 의견도 있었지만, 예전부터 농담으로 많이 쓰이던 것이라 탈락됐다. 노화 예방에 젊은층도 가세하고, 젊은 세대가 입는 편안한 옷차림을 중장년층도 좋아하는 등 나이에 무관하게 무언가를 선택하므로 ‘탈피, 타파, 파괴’보다는 ‘무관, 불문, 무시’ 쪽이 맞는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양쪽 모두를 후보로 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뒤늦게 ‘나이 넘어’라는 참신한 의견이 나와 많은 위원들의 호응을 받았다. 논의 끝에 탈연령, 나이 파괴, 나이 무관, 나이 넘어가 후보로 결정됐다. 국민들의 선호도는 어떻게 나왔을까? 국민수용도 조사에서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65.6%였고, 대체어 선호도는 ‘나이 무관’이 80.5%로 가장 높았고, ‘탈연령’(57.4%), ‘나이 넘어(39.9%)’, ‘나이 파괴(33.7%)’ 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탈우리말’하지 않고, 외국어를 더 많이 쓰지 않고, 우리말과 무관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우리말을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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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알 권리 보장할 말 쓰자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한다. 사람 하나가 빠지면 그만큼 빈자리가 크게 다가온다는 속담이다. 말은 그 반대다. 든 자리는 표가 나도 난 자리는 모른다. 정부 당국자들이 외국어를 남용하면 저래도 되나 싶다가도 그걸 사용하지 않으면 평소에 외국어를 남용하는지 어떤지 눈치채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뒤 온갖 외국어가 등장했다. 코호트 격리, 팬데믹, 에피데믹, 엔데믹, 글로브 월, 드라이브 스루, 워킹 스루, 부스터샷, 트래블 버블,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롱코비드…. 마치 국민 외국어 교육시키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거기에 평소 공무원들이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외국어 용어까지 가세해 사태 파악을 어렵게 만들곤 했다. 지난해 10월 중순 단계적 일상회복 지원위원회에서는 ‘단계적 일상회복 로드맵’을 제시하겠노라고 밝혔다. 그 얼마 전에 정부 관계자는 언론 등에서 수없이 사용하던 ‘위드 코로나’라는 말이 코로나와 함께 살아도 별문제 없다는 인상을 줘 방역에 혼란을 부를 위험이 있다고 보고 이를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사용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뜻이 모호하거나 국민이 잘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 용어가 정책 집행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이전의 경험에서 배운 결과였으리라. 그런데 그러고 나서 2주도 지나지 않아 ‘로드맵’이라는 용어를 덜컥 사용한 것이다. 로드맵은 당국자들이 즐겨 쓰는 외국어 단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말일 게다. 이런 말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 “아니, 로드맵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반문하는 공무원도 있다. 하지만 2020년 한글문화연대 조사에 따르면 로드맵이 무슨 뜻인지 아는 국민은 54%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 절반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70대 이상의 국민 가운데에서는 겨우 14%만이 이 말의 뜻을 안다고 답했다. 한글문화연대에서 부랴부랴 문제점을 지적한 덕에 정부는 로드맵 대신 ‘이행 계획’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물론 국민은 그런 소동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으리라.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이 이런 사정을 모른 채 지난 4월 말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을 발표했다. 사라졌던 로드맵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세부 실천 과제명과 설명에 ‘거버넌스’ ‘패스트트랙’ ‘롱코비드’ 등 다른 외국어 용어도 많이 사용했다. 이 밖에도 인프라(기반시설), 어젠다(의제), 가이드라인(지침) 등 우리말로 써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굳이 외국어 용어로 표현했다. 이 중 거버넌스는 국민 이해도 조사에서도 단지 15%만이 뜻을 안다고 답한 말이다. 내 느낌엔 이조차도 좀 부풀려진 수치다. 어려운 외국어를 사용하면 국민이 용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할 수 있다. 코로나 방역 대책은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에 새로운 코로나 대응 체계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서는 국민이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써야 한다. 특히 고위험군에 속하는 고령층이 어려운 외국어 용어 때문에 코로나 정보에서 소외돼선 안 된다. 이는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의 실천 과제인 ‘고위험계층 보호’ 목표와도 어긋난다. 개인의 사적인 어휘 구사를 따지는 게 아니다. 공공 영역에서 외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외국어는 소외감을 넘어 모욕감을 주기까지 한다.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 원칙을 잘 몰라서 그랬는지 110대 국정과제에도 ‘AI’ ‘R&D’ 등 로마자가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새 정부에서 명심해주길 바라건대, 언어는 인권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공언어에서 쉬운 우리말을 쓰길 기대한다. * 이 글은 국민일보 <청사초롱>란에도 연재하였습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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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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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로테크? 단순 기술!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부정적 선입견을 품게 하는 낱말이 있다. 분명 가치중립적으로 사용했는데도 어느샌가 ‘좀 열등한 개념’으로 느끼는 표현이다. ‘로테크’(low tech)라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은 ‘선입견을 주는 표현’을 피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로테크란 ‘차원이 낮은 단순한 기술이나 기본적인 기술’을 일컫는 말이다.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에서도 쉽게 제작하거나 수리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다. 환경친화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이미 20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널리 쓰이고 있는 말로, 언론에서는 ‘낮은 기술’, ‘과거 기술’, ‘단순 기술’에 심지어 ‘낡은 기술’로도 쓰이곤 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최신 기술 못지않게 과거 기술에도 주목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하이테크에 비해 기술 수준은 낮지만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이른바 ‘로테크’ 제품”(동아일보 2021년 8월 9일자), “장애인들에게는 비싸고 접근하기 어려운 하이테크보다 ‘로테크’, 즉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일상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더 필요한 경우가 많다”(아주경제 2019년 1월 30일)와 같은 예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해킹이나 조작 위험이 큰 하이테크 대신 물증이 남고 개입 위험이 적은 ‘낡은 기술’, 즉 로테크로 선거를 치르자는 논설(조선일보 2020년 2월 14일자)도 나왔다. 그렇다면 로테크를 우리말로 옮길 때 가장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까. 먼저 로테크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번역한 ‘낮은 기술’, ‘하위 기술’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첨단 기술을 뜻하는 ‘하이테크’(high tech)에 대칭이 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비첨단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앞서 이야기한 고민이 시작됐다. 단어가 주는 부정적 느낌. ‘낮은 기술’(기술 수준이 높지 않다), ‘하위 기술’(기술 난도의 층위에서 아래쪽에 속한다)이라는 표현을 혹시라도 ‘열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지만 로테크를 기술의 다양한 층위에서 열등한 기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편물 기계로 만들어 낸 옷과 손뜨개로 만든 옷을 비교해 보자. 손뜨개질은 편물 기계의 작동만큼 복잡해 보이지 않고 인간의 노동 외 별도의 에너지를 요구하지도 않지만, 작업 자체의 기술이 편물 기계의 작동보다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물 기계가 개발될 수 있는 ‘기본 기술’을 제공한 것이 손뜨개질이다. 그래서 새말모임의 위원들은 비록 ‘의미상 틀린 말’이 아닐지라도 혹여 부정적이거나 열등하게 느껴질 만한 낱말은 제외하기로 했다. 대신 ‘복잡하지 않고 접근하기 쉬워 요즘 그 가치가 새롭게 각광받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단순 기술’ 혹은 ‘기초 기술’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한편 로테크가 첨단 기술이 개발되기 전 단계에 쓰였고, 이들 기술을 바탕으로 하이테크가 발전했다는 점에서 전통 기술, 원시 기술, 원초 기술 등의 용어도 새말로 적합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들 표현은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들 수 있다. 요즘 ‘로테크’가 디지털 첨단 기술을 대체해 급부상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여러 논의 끝에 새말모임의 위원들은 ‘단순 기술’을 가장 적합한 대체어로 골랐고, ‘기초 기술’과 함께 ‘첨단 기술’에 반대되는 뜻으로 ‘비첨단 기술’을 다음 순위 후보로 올렸다. 국민 수용도 조사 결과 시민들은 ‘로테크’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한다는 데 73.1%가 동의했고, 가장 적합한 우리말 대체어로 ‘단순 기술’을 택했다(전체 응답자의 75.5%가 선택). 여담 한 가지를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로테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우리말 발음으로는 로테크라고 똑같이 표기하지만, 뜻이 다른 단어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로테크’(law tech)다. 법(Law)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로, 법률 분야에 빅데이터, 기계학습, 인공지능과 같은 정보기술을 융합한 기술이다. 로테크라고만 쓰면 독자들은 단순 기술과 법 관련 정보기술 중 어느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동음어인 ‘로테크’를 쓸 때마다 매번 영어 단어와 뜻을 병기해 줘야 할 것인가? 그러지 말자. 그럴 필요가 없다. 두 단어 모두 우리말로 쓰면 된다. ‘로테크’(low tech)는 ‘단순 기술’로, ‘로테크’(law tech)는 ‘법 관련 정보기술’로. 로테크를 서둘러 우리말로 순화해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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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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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친환경 의식도 자라고, 우리말 사랑도 자라길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새말 모임에서는 회의마다 6~7개의 외국어 후보 중 두세 개를 골라 알기 쉽게 다듬는다. 아무래도 가장 널리 알려져 시급하게 바꾸어야 할 용어나 비교적 일반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만한 단어부터 우선 살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클린 뷰티’(clean beauty)는 이번 회의에서 이견 없이 제일 먼저 손을 볼 대상으로 꼽혔다. 언론에 최초 등장한 때가 2018년으로 그만큼 다른 후보 말보다 일찍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2022년 3월 25일 기준으로 구글 뉴스에서 무려 2만 2700개가 검색될 만큼 많이 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클린 뷰티’는 ‘유해 성분을 배제하고 환경 보호를 고려해 만드는 화장품’을 이르는 말이다. “자연 유래 유효 성분을 활용한 별도의 케이스가 필요 없는 고체 비누 형태의 샴푸로 환경까지 보호하는 클린 뷰티 제품”(디지틀조선일보 2022년 3월 16일), “지난해 화장품 시장에는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클린 뷰티 바람이 불었다. 팬데믹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폭증했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위기감이 밀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컨슈머타임스 2022년 3월 21일) 등 언론 기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다. ‘클린’이라는 말은 ‘클린 뷰티’ 외에도 환경 오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유기농 작물로 만든 음식인 클린 푸드, 친환경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클린 라이프, 생활 쓰레기를 효율적으로 수거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쓰레기를 내놓도록 만든 시설인 클린 하우스 등이 그 예다. 이렇게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라서인지 ‘클린 뷰티’를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도 수월했다. 새말모임 위원들의 의견은 금세 ‘친환경 화장품’으로 모였다. ‘뷰티’라는 단어는 ‘아름다움’, ‘미용’을 뜻하는 추상명사지만, ‘클린 뷰티’에서는 ‘화장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어서 이를 그대로 옮기기로 했다. 덧붙여 또 다른 다듬은 말 후보로 ‘녹색 화장품’, ‘청정 화장품’을 골랐다. 시민들의 의견은 어땠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클린 뷰티’라는 말이 이미 많이 쓰이고는 있었으나 국민 수용도 조사에서 응답자 71.2%가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새말모임 위원들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친환경 화장품’이 적합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89.8%). 사실 ‘클린 뷰티’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친환경’이라는 뜻을 품고 사용된 것은 아니다. 시작은 ‘내 몸에 해롭지 않은 성분으로 만든 저자극 화장품’으로 ‘환경’보다는 ‘내 몸’에 이롭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 말에 담은 의미가 확대되면서 내 몸에 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자연을 덜 파괴하는 제품을 일컫는 데까지 이른 셈이다. 지금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만든 화장품이나 과대 포장하지 않은 화장품, 내용물을 재충전할 수 있는 용기로 만든 화장품까지 모두 포괄해 ‘클린 뷰티’라 일컫고 있다. 이렇게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환경을 위해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로 새롭게 생겨나는 개념이나 단어의 많은 수가 영어라는 사실이다. 소비에 신념과 가치를 더하는 ‘미닝 아웃’(Meaning Out), 쓰레기 배출을 0에 가깝게 줄인다는 ‘제로 웨이스트’,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건 코스메틱’, 친환경적인 콩기름으로 만든 ‘소이 잉크’, 빈 병을 수거해 반납하면 혜택을 주는 ‘공병 프리퀀시’ 등등. 우리말로도 얼마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도 영어로 사용되고 있다. 바라건대 친환경 의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우리말 사랑도 함께 발맞춰 자라나기를.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이들이 우리말도 함께 아끼고 보듬어 ‘쓰레기 안 만들기’, ‘빈 병 모아 보내기’, ‘다시 쓰기’, ‘덜 버리기’와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써 주기를 소망해 본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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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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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펫 프렌들리 서비스? 아니 아니, 반려동물 친화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같은 단어라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에 따라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는 금기시되던 말이 다른 시대에는 긍정적으로, 또는 무난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예전엔 애완동물이라고 쓰다가 지금은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이라고 쓰던 초기에는 국립국어원에 항의성 민원 전화가 적지 않게 왔다고 한다. 왜 동물에게 ‘반려’라는 단어까지 쓰냐는 얘기였다. 지금은 반려동물들이 좋은 것을 먹고, 철저한 의료 서비스도 받으며 지내는 일이 낯설지 않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옛 속담이 현실인 세상이 됐다. 물론 한편에서는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농장에서 학대받으며 지내는 동물들도 있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새말모임 위원들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지금 언중들의 언어 감각을 거스르지 않되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을 제안해야 한다는. 이번에 주어진 단어는 ‘펫 프렌들리’였다. ‘펫 프렌들리’는 주로 반려동물과 밀접하게 관련된 서비스 상품을 가리키는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여행 상품, 호텔이나 카페, 식당 등에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서비스나 산업, 상점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펫 프렌들리’를 우리말로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펫 프렌들리를 의미 그대로 번역하면 ‘반려동물 친화적인’ 정도가 될 것이다. 이번에 다듬어야 할 새말은 주로 명사로 끝나는 대부분의 다른 용어들과 달리 형용사였다. 그렇다 보니 대체어를 만들 때 원어의 품사와 같은 형용사로 할 것인지, 아니면 ‘펫 프렌들리’에 주로 뒤따르는 서비스나 산업, 사업 등을 포함할 것인지를 먼저 정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대체어 마련에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는 데 다수가 동의함에 따라 곧 ‘펫 프렌들리’를 다듬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펫 프렌들리’는 ‘펫 프렌들리 존, 펫 프렌들리 매장, 펫 프렌들리 브랜드, 펫 프렌들리 호텔’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펫 프렌들리’를 ‘애견 동반’이나 ‘반려동물 동반’ 정도로 하면 ‘존’이나 ‘매장’, ‘호텔’이 붙은 말은 ‘애견 동반 매장, 반려동물 동반 호텔’ 등으로 바꿀 수 있겠지만, ‘펫 프렌들리 브랜드’ 같은 경우에는 ‘○○ 동반’으로 대신하기 어려웠다. 그런 중 뒤에 어떤 단어가 와도 두루 사용할 수 있다며 ‘반려동물 친화’와 ‘반려동물 배려’라는 표현을 한 위원이 제안했다. 이에 “배려는 사실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바탕이 된 것 같다. 동반도 괜찮을 것 같다”는 다른 의견이 나왔다. 또 반려자와 동반자는 같은 뜻이지만, 왠지 동물에게 동반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언중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요즘은 뱀이나 이구아나, 거미 같은 동물이나 곤충들도 반려동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동물 전체가 반려동물이 될 것 같으니, 반려동물에서 반려를 빼고 그냥 동물로 하는 건 어떨까요?”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모든 동물을 반려동물로 포괄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논의 끝에 ‘반려동물 친화’, ‘친반려동물’, ‘반려동물 배려’ 이렇게 세 용어가 다듬은 말 후보로 정해졌다. 국민수용도 조사 결과 ‘펫 프렌들리’의 다듬은 말은 ‘반려동물 친화’로 확정, 발표됐다. 요즘 반려동물을 둘러싼 다툼에 관한 기사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물도 아끼고, 사람도 아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사람도 동물의 한 종류이니 말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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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지승호
- 등록일 :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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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큐레이션 커머스’는 ‘소비자 맞춤 상거래’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이번 새말모임에서 다듬을 말은 ‘큐레이션 커머스’였다. 역시 어렵다. 처음 듣는 말이다. 신조어다 보니 새말모임의 위원들에게도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땅히 다듬어야지. ‘큐레이션 커머스’는 전시 기획자가 작품을 수집, 전시, 기획하듯이 특정 분야 전문가가 소비자의 성향 등을 고려해 직접 제품을 고르고 할인한 가격에 파는 전자상거래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는 ‘큐레이터’가 작품을 추천하듯이 전문가가 추천해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전자상거래의 일종이다. 새말모임의 한 위원은 “예전에 ‘큐레이션 서비스’를 정보 추천 서비스로 다듬었던데, 그것과 연계해서 ‘추천 상거래’로 해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했고, 다른 위원은 “전문가 선별 상거래”, 또 다른 위원은 “커머스는 대체로 상거래로 많이 쓰고 있으니까 앞에 맞춤을 붙여 맞춤 상거래는 어떨까 싶다”고 의견을 냈다. ‘전문가’라는 단어가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쟁점이 되기도 했다. ‘큐레이션’이라는 말의 의미가 담기려면 전문가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가 빠지면 기업 추천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몇몇 용례를 살펴보았을 때 기업에서 소비자의 필요에 맞춰 상품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논의 끝에 ‘큐레이션 커머스’는 이미 사용해 본 소비자가 추천하는 것과 해당 기업에서 추천해 주는 것으로 크게 나누었다. 애초에는 전문가라는 의미에서 시작이 됐지만, 지금은 더 넓게 쓰이고 있으니까 굳이 전문가라는 말을 포함해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론도 나왔다. ‘기획’이라는 말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전시 기획자에서 기획이 중요하듯이 ‘기획 상거래’라고 하면 굳이 전문가라는 말을 안 써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넓게 느껴질 위험이 있습니다. ‘기획 부동산’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논의를 이어 가며 다듬은 말 후보를 하나씩 정했다. 소비자에게 맞춰 주는 것이 아니고, 큐레이터가 선별해서 추천해 주는 개념에 더 가까우니 ‘전문가 추천 상거래’를 제안한다는 한 위원의 의견 뒤로 ‘전문가 추천 판매, 정보 추천 판매, 추천 상거래’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치열한 논의 끝에 다듬은 말 후보는 ‘추천 상거래, 전문가 선별 상거래, 소비자 맞춤 상거래’로 정해졌다. 이를 토대로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국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 국민 수용도 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79.1%가 “큐레이션 커머스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응답했고, ‘큐레이션 커머스’를 ‘소비자 맞춤 상거래’로 바꾸는 데 응답자의 81.9%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5분의4가 동의해 준 셈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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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지승호
- 등록일 : 202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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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는 청년을 뭐라고 할까?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예전에 소녀소년가장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지금은 이 말의 사용 빈도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 같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빈부격차가 큰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부모나 형제 등을 돌보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 해체되고, 1인가구 등이 늘어난 탓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사회문제가 되었던 간병살인의 문제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 케어러’라는 말을 접했다. ‘영 케어러’는 장애, 질병, 약물 중독 등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청년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런 청년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로, 부모는 65세 이하인 경우가 많아서 노인 돌봄 서비스는 물론 장애인 지원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지정도 쉽지 않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한다.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쉽지 않은 청년들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런 청년 중 일부가 일탈행위라도 하면 이들을 위한 지원이나 배려는 없이 우리 사회는 개탄하기에만 바쁘다. 우리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것이라고는 매질과 매도밖에 없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말이라도 바꿔 줬으면 좋겠다. 새말모임 회의는 ‘영 케어러’란 표현을 두고 ‘가족 돌봄 청년’이 적절한지, 더 적절한 다른 용어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우선 가족을 돌보는 이를 청소년으로 할 건지, 청년으로 할 건지가 중요했다. 한글문화연대에서도 다룬 바가 있는데, “그것을 특정하기보다는 ‘어린 부양자’ 같은 말은 어떨까”라는 제안이 나왔다. “청년이라는 용어는 법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용어이고, 청소년이라고 하면 법에서 언급하는 청소년과 대조해 보아야 하는 문제가 생겨 오히려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는 의견에 이어 “청년이 성 중립적이기도 하고, 더 일반적인 용어라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는 의견도 나왔다. 청년과 청소년의 개념을 둘러싸고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처음 제시된 ‘가족 돌봄 청년’으로 의견이 모였다. 국민 수용도 조사에서 ‘영 케어러’라는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이 81.9%였는데, 85.9%가 ‘가족 돌봄 청년’을 적절한 말로 선택해 주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가족 돌봄 청년을 우리 사회 역시 잘 보호해 주어야 할 것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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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지승호
- 등록일 :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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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근거리 비행 수단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새말 모임에서는 때로 우리 사회에 아직 완성된 형태로 정착되지 않은 제도, 물건 혹은 용어를 우리말로 다듬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그 말을 대신할 우리말을 선정하는 과정은 조금 더 어렵다. 앞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거나 기능 자체가 변화할 수 있어서 지금의 모습이나 용도만을 가지고 말을 결정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해지거나 말의 수명이 다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라잉 모빌리티’(flying mobility)를 우리말로 다듬을 때 치열한 ‘설전’이 오간 것도 그 때문이다. ‘플라잉 모빌리티’라는 영어 자체의 뜻만 보면 ‘하늘을 나는 이동 능력’이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달리 특화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 장거리 교통·운송 수단인 비행기나 헬기와 구분해 ‘주로 서너 명 이하가 타는 에어 택시, 드론 택시, 개인용 비행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최근 언론 기사에서 “공약에는 ○○시에 플라잉 모빌리티 연구개발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등의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에어 택시, 드론 택시, 개인용 비행체의 예를 봐서도 알겠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상용화한 운송이나 교통수단은 아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용될지 짐작은 할 수 있되 쓰임새나 발전의 폭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랬기에 새말을 만드는 과정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에 ‘도심’이라는 표현을 넣읍시다. 원래 이런 비행체를 놓고 ‘플라잉 모빌리티’보다 ‘어반 에어 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 즉 ‘도심 항공 교통’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맞습니다. 도심의 교통 체증을 피하려고 많이 사용하는 만큼 ‘도심’을 넣어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앞으로 도심 외에서도 폭넓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도심’을 넣으면 안 돼요. 용어의 뜻이 너무 협소해져 버립니다.” “하지만 ‘도심’이란 수식어를 빼면 기존 장거리 교통수단과 차별성이 없어져요.” “그렇다면 ‘지역’이나 ‘근거리’를 넣으면 어떨까요?” 현재의 쓰임새를 충실히 반영해 ‘도심’이란 표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넣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단어가 적합할까…. 이런 고민이 주를 이루었고, 그 외에 이 비행체의 ‘기능’을 표현하는 데에도 조율이 필요했다. 앞서 소개한 ‘도심 항공 교통’은 언론이나 업계에서 상당히 많이 쓰이고 익숙해진 말이지만, 뜻을 ‘교통수단’에 묶어 둔다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주로 교통의 측면에서 쓰임새가 많이 검토되고 있으나, 앞으로 운송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품어야 한다. 이를테면 지상 운송으로는 마땅치 않은 섬 지역에 물건을 배송할 때 드론 등이 널리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아 장시간의 토론을 거쳤고 결국 손을 들어가며 ‘근거리 비행 수단’으로 결정하게 됐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근거리 항공 수단’과 ‘근거리 하늘 이동 수단’이라는 말을 후보에 덧붙였다. 새말 모임의 위원들은 ‘도심’이라는 한정된 공간 표기를 넣지 않는 대신 기존 장거리 항공 이동 수단과 차별화하기 위해 ‘근거리’라는 표현을 모든 후보 낱말에 넣었다. 그리고 ‘교통’이라는 한정적 기능 대신 교통과 운송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비행 수단’, ‘이동 수단’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도 새말 위원들이 제시한 우선순위와 일치했다. ‘근거리 비행 수단’의 선호도가 81.9%로 가장 높았다. 이어 ‘근거리 항공 수단’(71.3%), ‘근거리 하늘 이동 수단’(68.4%) 순으로 나타났고, 최종적으로 ‘근거리 비행 수단’이 선정됐다. 이렇게 신중에 신중을 더해 말을 다듬는 것은 ‘말의 생명력’이 가진 끈질김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도 우주 비행선(飛行船) 혹은 우주선(宇宙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자어를 보면 ‘우주를 나는 배’라는 뜻이다. 강도 바다도 아닌 우주에 웬 ‘배’인가 싶다. 우주를 ‘배’로 표현한 것은 우주 비행이 ‘꿈에서나 가능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우주를 ‘항해’하는 것은 다른 어떤 교통수단도 아닌 ‘배’로서만 상상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공상과학소설에서도 항상 우주로 이동하는 수단은 배로 표현됐다. 그러다 처음으로 지금의 끝이 뾰족하고 원통형인 로켓 형태 비행 수단을 등장시킨 작품이 쥘 베른의 ‘달나라 탐험’(1869년)이었다. 그렇게 서구에서 애초 ‘배’로 상상한 우주 교통수단이 고스란히 우리 언어에도 들어와 지금도 ‘우주선’이라는 표현으로 살아남았으니,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말의 힘 때문에 새말 모임에서도 상상 속 우주 비행선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모를 차세대 문명 기기의 이름을 새로 붙이는 데 그다지도 고심했던 것이다.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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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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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미코노미, 자기를 위한 ‘자기 중심 소비’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미코노미? 무슨 말인지 유추해 본다. 아름다울 미(美)와 영어 낱말 이코노미(economy)를 써서 화장품 산업을 뜻하는 걸까? 아니면 쌀 미(米)를 써서 쌀농사를 통한 경제를 말하는 걸까? 둘 다 틀리고 말았다. 나를 뜻하는 영어 낱말 미(me)와 이코노미(economy)를 합친 말이 ‘미코노미’였다. ‘자기 만족을 위한 소비나 지출 등의 경제 활동’을 일컫는 말로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처음 언급됐다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코노미는 개인이 정보의 제작, 가공 및 유통을 전담하는 참여형 소비자(prosumer)로서의 역량이 강화됨에 따라 생겨난 경제 현상이며, 미코노미의 시점은 개인인 ‘나’이기 때문에 국가 및 세계 경제 등과 같은 거시적인 경제가 아닌 소규모 단위의 경제를 지향한다고 한다. 비슷한 외국어 신조어로는 펫코노미(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장 또는 산업). 일코노미(1인가구 급증으로 인한 경제 현상), 홈코노미(집안에서 다양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 등이 있다. 미코노미는 유행에 민감한 20~30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마케팅 측면에서 나오기도 했다. 1인가구의 급증으로 개인을 위한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셀프 힐링’(전문가의 도움 없이 집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플렉스’(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전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의미) 등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말 모임의 한 위원은 “직역하면 자기 만족을 위한 경제 활동이니 줄여서 자족경제라고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홈코노미’가 ‘재택 경제 활동’으로 다듬어졌는데, 그와 비슷하게 ‘자가 경제 활동’, ‘자가 중심 경제 활동’, ‘자기 만족 경제 활동’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의견들이 오가는 중에 “과연 이 말을 다듬는 것이 옳을까?” 하는 회의적인 의견이 있었다. 어쩌면 곧 사라질 말은 아닐까? 새말을 제안하는 사람들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함께 느껴졌다. 논의는 다시 이어졌다. 자족경제보다는 소비에 더 중점을 두어서 ‘자기 만족 소비’가 어떠냐는 제안이 나왔고, ‘경제’보다는 ‘소비’에 힘이 실렸다. 여기에 다시 “자족이나 자기 만족 대신 그냥 우리말로 좀 풀어서 나 위함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며 ‘나 위함 소비’라는 새로운 의견을 한 위원이 냈다. 열띤 토론 끝에 ‘자족 소비’, ‘자기 중심 소비’, ‘나 위함 소비’ 이렇게 세 가지가 후보로 정리됐다. 셋 중에 어떤 말이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될까? 여론 조사 결과 ‘미코노미’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74.8%였다. 말 다듬기에 대한 회의를 딛고 우리말을 찾아낸 새말 위원들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우리말 대체어 선호도는 ‘자기 중심 소비’가 82.7%로 가장 높았고, ‘나 위함 소비’(62.7%), ‘자족 소비’(54.8%)의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자기 중심 소비’를 선택한 것이고 다듬은 말로 최종 선정됐다. ‘나 위함 소비’가 글자 수에서 더 유리한 ‘자족 소비’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른 우리말로는 자기 만족 소비, 나를 위한 소비, 자기 중심적 소비, 개인 만족 소비, 자기 존중 소비 등의 의견이 있었다. 쉬운 우리말 사용이 자기 만족 언어 생활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생산적 활동으로도 이어졌으면 한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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