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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큐레이션 커머스’는 ‘소비자 맞춤 상거래’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이번 새말모임에서 다듬을 말은 ‘큐레이션 커머스’였다. 역시 어렵다. 처음 듣는 말이다. 신조어다 보니 새말모임의 위원들에게도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땅히 다듬어야지. ‘큐레이션 커머스’는 전시 기획자가 작품을 수집, 전시, 기획하듯이 특정 분야 전문가가 소비자의 성향 등을 고려해 직접 제품을 고르고 할인한 가격에 파는 전자상거래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는 ‘큐레이터’가 작품을 추천하듯이 전문가가 추천해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전자상거래의 일종이다. 새말모임의 한 위원은 “예전에 ‘큐레이션 서비스’를 정보 추천 서비스로 다듬었던데, 그것과 연계해서 ‘추천 상거래’로 해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했고, 다른 위원은 “전문가 선별 상거래”, 또 다른 위원은 “커머스는 대체로 상거래로 많이 쓰고 있으니까 앞에 맞춤을 붙여 맞춤 상거래는 어떨까 싶다”고 의견을 냈다. ‘전문가’라는 단어가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쟁점이 되기도 했다. ‘큐레이션’이라는 말의 의미가 담기려면 전문가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가 빠지면 기업 추천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몇몇 용례를 살펴보았을 때 기업에서 소비자의 필요에 맞춰 상품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논의 끝에 ‘큐레이션 커머스’는 이미 사용해 본 소비자가 추천하는 것과 해당 기업에서 추천해 주는 것으로 크게 나누었다. 애초에는 전문가라는 의미에서 시작이 됐지만, 지금은 더 넓게 쓰이고 있으니까 굳이 전문가라는 말을 포함해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론도 나왔다. ‘기획’이라는 말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전시 기획자에서 기획이 중요하듯이 ‘기획 상거래’라고 하면 굳이 전문가라는 말을 안 써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넓게 느껴질 위험이 있습니다. ‘기획 부동산’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논의를 이어 가며 다듬은 말 후보를 하나씩 정했다. 소비자에게 맞춰 주는 것이 아니고, 큐레이터가 선별해서 추천해 주는 개념에 더 가까우니 ‘전문가 추천 상거래’를 제안한다는 한 위원의 의견 뒤로 ‘전문가 추천 판매, 정보 추천 판매, 추천 상거래’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치열한 논의 끝에 다듬은 말 후보는 ‘추천 상거래, 전문가 선별 상거래, 소비자 맞춤 상거래’로 정해졌다. 이를 토대로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국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 국민 수용도 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79.1%가 “큐레이션 커머스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응답했고, ‘큐레이션 커머스’를 ‘소비자 맞춤 상거래’로 바꾸는 데 응답자의 81.9%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5분의4가 동의해 준 셈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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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는 청년을 뭐라고 할까?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예전에 소녀소년가장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지금은 이 말의 사용 빈도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 같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빈부격차가 큰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부모나 형제 등을 돌보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 해체되고, 1인가구 등이 늘어난 탓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사회문제가 되었던 간병살인의 문제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 케어러’라는 말을 접했다. ‘영 케어러’는 장애, 질병, 약물 중독 등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청년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런 청년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로, 부모는 65세 이하인 경우가 많아서 노인 돌봄 서비스는 물론 장애인 지원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지정도 쉽지 않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한다.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쉽지 않은 청년들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런 청년 중 일부가 일탈행위라도 하면 이들을 위한 지원이나 배려는 없이 우리 사회는 개탄하기에만 바쁘다. 우리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것이라고는 매질과 매도밖에 없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말이라도 바꿔 줬으면 좋겠다. 새말모임 회의는 ‘영 케어러’란 표현을 두고 ‘가족 돌봄 청년’이 적절한지, 더 적절한 다른 용어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우선 가족을 돌보는 이를 청소년으로 할 건지, 청년으로 할 건지가 중요했다. 한글문화연대에서도 다룬 바가 있는데, “그것을 특정하기보다는 ‘어린 부양자’ 같은 말은 어떨까”라는 제안이 나왔다. “청년이라는 용어는 법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용어이고, 청소년이라고 하면 법에서 언급하는 청소년과 대조해 보아야 하는 문제가 생겨 오히려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는 의견에 이어 “청년이 성 중립적이기도 하고, 더 일반적인 용어라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는 의견도 나왔다. 청년과 청소년의 개념을 둘러싸고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처음 제시된 ‘가족 돌봄 청년’으로 의견이 모였다. 국민 수용도 조사에서 ‘영 케어러’라는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이 81.9%였는데, 85.9%가 ‘가족 돌봄 청년’을 적절한 말로 선택해 주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가족 돌봄 청년을 우리 사회 역시 잘 보호해 주어야 할 것이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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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근거리 비행 수단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새말 모임에서는 때로 우리 사회에 아직 완성된 형태로 정착되지 않은 제도, 물건 혹은 용어를 우리말로 다듬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그 말을 대신할 우리말을 선정하는 과정은 조금 더 어렵다. 앞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거나 기능 자체가 변화할 수 있어서 지금의 모습이나 용도만을 가지고 말을 결정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해지거나 말의 수명이 다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라잉 모빌리티’(flying mobility)를 우리말로 다듬을 때 치열한 ‘설전’이 오간 것도 그 때문이다. ‘플라잉 모빌리티’라는 영어 자체의 뜻만 보면 ‘하늘을 나는 이동 능력’이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달리 특화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 장거리 교통·운송 수단인 비행기나 헬기와 구분해 ‘주로 서너 명 이하가 타는 에어 택시, 드론 택시, 개인용 비행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최근 언론 기사에서 “공약에는 ○○시에 플라잉 모빌리티 연구개발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등의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에어 택시, 드론 택시, 개인용 비행체의 예를 봐서도 알겠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상용화한 운송이나 교통수단은 아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용될지 짐작은 할 수 있되 쓰임새나 발전의 폭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랬기에 새말을 만드는 과정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에 ‘도심’이라는 표현을 넣읍시다. 원래 이런 비행체를 놓고 ‘플라잉 모빌리티’보다 ‘어반 에어 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 즉 ‘도심 항공 교통’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맞습니다. 도심의 교통 체증을 피하려고 많이 사용하는 만큼 ‘도심’을 넣어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앞으로 도심 외에서도 폭넓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도심’을 넣으면 안 돼요. 용어의 뜻이 너무 협소해져 버립니다.” “하지만 ‘도심’이란 수식어를 빼면 기존 장거리 교통수단과 차별성이 없어져요.” “그렇다면 ‘지역’이나 ‘근거리’를 넣으면 어떨까요?” 현재의 쓰임새를 충실히 반영해 ‘도심’이란 표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넣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단어가 적합할까…. 이런 고민이 주를 이루었고, 그 외에 이 비행체의 ‘기능’을 표현하는 데에도 조율이 필요했다. 앞서 소개한 ‘도심 항공 교통’은 언론이나 업계에서 상당히 많이 쓰이고 익숙해진 말이지만, 뜻을 ‘교통수단’에 묶어 둔다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주로 교통의 측면에서 쓰임새가 많이 검토되고 있으나, 앞으로 운송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품어야 한다. 이를테면 지상 운송으로는 마땅치 않은 섬 지역에 물건을 배송할 때 드론 등이 널리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아 장시간의 토론을 거쳤고 결국 손을 들어가며 ‘근거리 비행 수단’으로 결정하게 됐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근거리 항공 수단’과 ‘근거리 하늘 이동 수단’이라는 말을 후보에 덧붙였다. 새말 모임의 위원들은 ‘도심’이라는 한정된 공간 표기를 넣지 않는 대신 기존 장거리 항공 이동 수단과 차별화하기 위해 ‘근거리’라는 표현을 모든 후보 낱말에 넣었다. 그리고 ‘교통’이라는 한정적 기능 대신 교통과 운송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비행 수단’, ‘이동 수단’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도 새말 위원들이 제시한 우선순위와 일치했다. ‘근거리 비행 수단’의 선호도가 81.9%로 가장 높았다. 이어 ‘근거리 항공 수단’(71.3%), ‘근거리 하늘 이동 수단’(68.4%) 순으로 나타났고, 최종적으로 ‘근거리 비행 수단’이 선정됐다. 이렇게 신중에 신중을 더해 말을 다듬는 것은 ‘말의 생명력’이 가진 끈질김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도 우주 비행선(飛行船) 혹은 우주선(宇宙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자어를 보면 ‘우주를 나는 배’라는 뜻이다. 강도 바다도 아닌 우주에 웬 ‘배’인가 싶다. 우주를 ‘배’로 표현한 것은 우주 비행이 ‘꿈에서나 가능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우주를 ‘항해’하는 것은 다른 어떤 교통수단도 아닌 ‘배’로서만 상상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공상과학소설에서도 항상 우주로 이동하는 수단은 배로 표현됐다. 그러다 처음으로 지금의 끝이 뾰족하고 원통형인 로켓 형태 비행 수단을 등장시킨 작품이 쥘 베른의 ‘달나라 탐험’(1869년)이었다. 그렇게 서구에서 애초 ‘배’로 상상한 우주 교통수단이 고스란히 우리 언어에도 들어와 지금도 ‘우주선’이라는 표현으로 살아남았으니,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말의 힘 때문에 새말 모임에서도 상상 속 우주 비행선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모를 차세대 문명 기기의 이름을 새로 붙이는 데 그다지도 고심했던 것이다.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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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미코노미, 자기를 위한 ‘자기 중심 소비’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미코노미? 무슨 말인지 유추해 본다. 아름다울 미(美)와 영어 낱말 이코노미(economy)를 써서 화장품 산업을 뜻하는 걸까? 아니면 쌀 미(米)를 써서 쌀농사를 통한 경제를 말하는 걸까? 둘 다 틀리고 말았다. 나를 뜻하는 영어 낱말 미(me)와 이코노미(economy)를 합친 말이 ‘미코노미’였다. ‘자기 만족을 위한 소비나 지출 등의 경제 활동’을 일컫는 말로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처음 언급됐다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코노미는 개인이 정보의 제작, 가공 및 유통을 전담하는 참여형 소비자(prosumer)로서의 역량이 강화됨에 따라 생겨난 경제 현상이며, 미코노미의 시점은 개인인 ‘나’이기 때문에 국가 및 세계 경제 등과 같은 거시적인 경제가 아닌 소규모 단위의 경제를 지향한다고 한다. 비슷한 외국어 신조어로는 펫코노미(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장 또는 산업). 일코노미(1인가구 급증으로 인한 경제 현상), 홈코노미(집안에서 다양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 등이 있다. 미코노미는 유행에 민감한 20~30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마케팅 측면에서 나오기도 했다. 1인가구의 급증으로 개인을 위한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셀프 힐링’(전문가의 도움 없이 집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플렉스’(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전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의미) 등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말 모임의 한 위원은 “직역하면 자기 만족을 위한 경제 활동이니 줄여서 자족경제라고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홈코노미’가 ‘재택 경제 활동’으로 다듬어졌는데, 그와 비슷하게 ‘자가 경제 활동’, ‘자가 중심 경제 활동’, ‘자기 만족 경제 활동’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의견들이 오가는 중에 “과연 이 말을 다듬는 것이 옳을까?” 하는 회의적인 의견이 있었다. 어쩌면 곧 사라질 말은 아닐까? 새말을 제안하는 사람들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함께 느껴졌다. 논의는 다시 이어졌다. 자족경제보다는 소비에 더 중점을 두어서 ‘자기 만족 소비’가 어떠냐는 제안이 나왔고, ‘경제’보다는 ‘소비’에 힘이 실렸다. 여기에 다시 “자족이나 자기 만족 대신 그냥 우리말로 좀 풀어서 나 위함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며 ‘나 위함 소비’라는 새로운 의견을 한 위원이 냈다. 열띤 토론 끝에 ‘자족 소비’, ‘자기 중심 소비’, ‘나 위함 소비’ 이렇게 세 가지가 후보로 정리됐다. 셋 중에 어떤 말이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될까? 여론 조사 결과 ‘미코노미’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74.8%였다. 말 다듬기에 대한 회의를 딛고 우리말을 찾아낸 새말 위원들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우리말 대체어 선호도는 ‘자기 중심 소비’가 82.7%로 가장 높았고, ‘나 위함 소비’(62.7%), ‘자족 소비’(54.8%)의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자기 중심 소비’를 선택한 것이고 다듬은 말로 최종 선정됐다. ‘나 위함 소비’가 글자 수에서 더 유리한 ‘자족 소비’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른 우리말로는 자기 만족 소비, 나를 위한 소비, 자기 중심적 소비, 개인 만족 소비, 자기 존중 소비 등의 의견이 있었다. 쉬운 우리말 사용이 자기 만족 언어 생활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생산적 활동으로도 이어졌으면 한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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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알피에이’(RPA)는 ‘업무 처리 자동화’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신조어라는 것은 새로 생긴 말인 만큼 생소하다. 우리말로 쉽게 쓸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새말 모임 구성원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전문 영역의 신조어는 특히 그렇다. 전문가들은 신조어가 외국어라도 원래 사용하던 말을 쓰는 것이 훨씬 편하겠지만, 이 신조어가 전문 영역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일반인들은 어렵고 낯설 수밖에 없다. 이번에 올라온 다듬을 말은 ‘알피에이(RPA)’다. 오, 이런. 자동차 알피엠(RPM·Revolution Per Minute)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건 또 뭔가? 신조어를 그냥 쓰면 안 된다는 강한 신조는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이 말은 우리말로 얼른 바꾸는 것이 좋겠다. 행정안전부에서 이 말을 급히 다루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알피에이가 뭔가 했더니 ‘Robotics Process Automation’의 첫 글자를 딴 말이었다. 직역해 보면 ‘로봇을 통한 공정 자동화’ 정도. “인간을 대신해 수행할 수 있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알고리즘화하고 소프트웨어로 자동화하는 기술”(인간 작업을 모사하는 소프트웨어 로봇)을 뜻한다고 한다. 단순히 풀어 써서 ‘로봇을 이용한 처리 자동화’라고 하면 말이 너무 길어진다. 그래서 ‘로보틱스’(robotics)를 빼면 처리 자동화인데, 그렇게 되면 말맛을 살리기가 어렵고, OA(Office Automaion)와 차별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위원들의 의견이 있었다. 이번에는 ‘자동처리 로봇’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로봇이기도 하고, 매크로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어서 적절하지 않았다. 로봇이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되면 ‘공정 자동화’가 어떤가 하는 의견도 나왔다. 열띤 토의 끝에 사전에도 나와 있고, 로봇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일단 몸체가 있는 것을 로봇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로봇 처리 자동화’가 후보로 채택됐다. ‘로봇식’이 맞는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로봇식’의 반대말로 ‘인간식’이라는 것은 없으니 ‘식’은 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으로 뜻이 모였다. 또 실제 쓰임을 보았을 때 로봇 방식이라는 어떤 개념보다는 전산화, 기계화, 자동화되는 것들을 좀더 폭넓게 쓰고 있는 점에서 ‘업무 처리 자동화’ 역시 우리말 용어로 떠올랐다. 행정안전부도 ‘일하는 방식 개선 추진의 일환으로 알피에이(RPA) 활성화를 추진 중에 있어서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기가 적절한 RPA의 우리말 명칭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고, ‘프로세스’를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업무 처리 자동화’, ‘로봇 처리 자동화’ 두 개의 용어가 후보로 채택됐다. ‘알피에이’라는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데 국민들은 80.6%가 동의했다. 우리말 후보인 ‘로봇 처리 자동화’와 ‘업무 처리 자동화’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높은 선택을 받았을까? ‘로봇 처리 자동화’(72.5%)보다 ‘업무 처리 자동화’(85.7%)가 높았다. 다른 우리말 의견으로는 ‘반복 업무 처리 자동화’, ‘로봇 공정 자동화’, ‘로봇 업무 처리 자동화’, ‘AI 업무 자동화’, ‘사무 처리 자동화’ 등이 제시됐다. 문득 신조어를 우리말로 자동 변환해 주는 업무 처리 자동화 시스템이 개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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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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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옷 갈아입고 돌아온 신조어, ‘코워킹 스페이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 혹은 개념이 생겨났는데 이를 나타낼 만한 말이 외국어로만 존재할 때, 적절한 우리말 표현을 만들 때까지 피치 못하게 외국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낸 ‘밈’(meme)이란 표현이 그렇다. 지금은 ‘문화유전자’라는 우리말 표현으로도 대체되지만, 원래 표현이 품은 뜻을 살리기에는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아 1976년 이 단어가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우리말이 있고, 얼마든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데도 굳이 새로 외국어를 도입해 사용하려는 경우가 있다. 오늘 살펴보려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가 그렇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여러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공유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든 협업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 뜻이라면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공유사무실’과 비슷한 말이잖은가. 왜 갑자기 이 낯선 표현이 ‘뜨는’ 것이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부동산 업체들의 임대 광고에도 이런 표현이 넘쳐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이 용어를 ‘발 빠르게’ 사용하고 있다. 신문 기사를 보면 “ㅈ시 소통협력센터에서는 개방형 코워킹 스페이스 입주자를 구한다”, “ㅂ시는 민간합동 코워킹 스페이스를 열었다”고 나온다. 이유를 짐작해 본다. 기존 ‘공유 사무실’은 회의실, 인쇄기 등의 기반시설을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입주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협업’(co-working)이라는 개념이 얹혀 새로 만든 게 ‘코워킹 스페이스’다. 단지 공간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협업이 목표라는 것이다. 하지만 ‘협업’이라는 개념 추가 때문에 새로운 외국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새말 모임에서도 이 부분이 화두에 올랐다. 기존 표현인 ‘공유 사무실’을 그대로 사용해도 얼마든지 ‘협업’의 의미가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분야 사람들이 서로 간에 담벼락이 낮은 공간에 모여서 ‘따로 또 같이’ 일을 하다 보면 교류와 협력이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실제로 ‘코워킹’을 내세운 공간 운영이 기존의 공유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아닌가. 그래서 새말 모임에서는 ‘공유 사무실’, ‘공유 사무 공간’ 그리고 ‘공용 업무 공간’을 ‘코워킹 스페이스’의 대체어 후보로 결정했다. 사실상 ‘새말’이 아니라 ‘원래 있던 말’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2월 4일부터 10일까지 국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수용도 조사에서 역시 응답자의 78.8%가 ‘코워킹 스페이스’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고, 새말 모임이 제시한 후보 새말 중 ‘공유 업무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 88.9%가 동의했다. ‘공유 사무 공간’과 ‘공유 사무실’도 각각 81.2%, 70.4%의 지지도로 높은 호응을 얻었다. 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코워킹 스페이스’를 대체할 우리말로 ‘공유 업무 공간’을 확정했다. 이렇게 폭넓게 변용하여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도 임대업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굳이 ‘협업’을 내세워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상술과 이미지 개선 때문이다. 개념 하나를 더 얹어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공유 사무실’(업무 공간)보다 진화하고 세련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개선된 바 없어도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더 진화한 상품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다. 임대업체의 상술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니 그렇다 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앞서서 우리말을 쓸 수 있는 표현에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외국어로 쓰면 첨단 유행에 뒤지지 않고 다른 지자체보다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강박이 아닐까. 이제는 지자체가 나서서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할 일이다. 협업은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 ‘공유 업무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꽃필 수 있으니까.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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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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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안전을 위한 말, ‘작업 중지 요청’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새말을 만든다는 것은 ‘더하기’와 ‘빼기’ 사이의 절묘한 균형 잡기다. 뜻하고자 하는 개념을 모두 나열하면 입에 착 붙는 압축된 표현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반면 간결함을 지나치게 좇다 보면 애초 담아내고자 했던 의미를 온전히 싣지 못할 수 있다. 어떤 핵심 단어를 골라 짝을 지어야 간결하면서 의미가 제대로 사는 새말을 만들 수 있는가. 새말 모임이 늘 품는 고민이다. ‘세이프티 콜’(Safety call)을 우리 새말로 풀어내는 과정도 그러했다. 세이프티 콜이란 현장의 위험을 잘 아는 근로자가 위험을 인지했을 때 즉시 위험을 신고하고 작업 중지를 요청하는 것을 가리킨다. 정부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고 작업장의 안전 문화를 자리잡게 하려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도입한 제도다. 용례를 보면 “○○발전은 근로자들의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을 위해 공식 안전소통 채널인 ‘세이프티 콜’을 시행한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이런 개념을 담은 용어가 생겨났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위험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제도가 마련됐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다고 해서 ‘세이프티 콜’이라는 말을 반드시 써야 할까? 물론 대답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근로자 안전신고제도’라 부른 바 있고, ‘근로자 작업중지권’, ‘불안정 작업장 신고 전화’라는 표현도 찾아볼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한 우리말이 없어서 도입된 ‘외래어’가 아니다. 얼마든지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외국어’다. 자, 그러면 대신 사용할 우리말을 만들어 보자. 이 제도를 마련한 이유나 목적에 충실하게 주요 개념을 아우르려면 다음과 같은 단어를 포함해야 할 터다. ‘근로자’, ‘안전’, ‘위험’, ‘긴급’, ‘작업 중지’, ‘알림’, ‘신고’, ‘제도’ 등. 이 중 ‘근로자’는 행위 주체를 가리키며 ‘안전·위험’은 왜 이런 조치를 요구하는지 이유를 나타내는 단어다. ‘작업 중지’는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얻으려는 조치가 무엇인지를, ‘알림·신고·요청’은 근로자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하는 행위를 품은 용어다. 4종류의 단어 묶음에서 한 가지씩은 꼭 새말에 포함돼야 할 필수 용어들이겠지만, 이들 개념을 최대한으로 아우른다면 ‘근로자 긴급 위험/안전 신고/알림 및 작업중지 요청 제도(권리)’ 정도가 되겠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전달되기는 하지만, 길어도 너무 길다. 한글로 다섯 글자인 ‘세이프티 콜’ 대신 사용하기에는 기억하기도 어렵고 입에 붙지도 않는다. 그래서 취사선택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새말 모임에서도 이렇게 더해 보고 저렇게 빼 보며 최상의 조합을 찾아 궁리했다. ‘근로자 위험 신고제’, ‘위험 감지 신고제’, ‘안전 외침’, ‘긴급 안전 요청’, ‘안전 요청 신고’ 등등. 우선 앞머리의 ‘근로자’와 꼬리의 ‘~제’ 혹은 ‘~권’을 빼자고 의견이 모였다. 간결한 표현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문장의 맥락 속에서 충분히 뜻이 전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1순위 후보로는 이 제도의 목표로 삼은 ‘구체적 조치’를 강조한 ‘작업 중지 요청’이 뽑혔다. ‘왜 작업 중지를 요청하는지’, 즉 ‘안전을 위해서’라는 뜻은 아쉽게도 빠진다. 대신 2안과 3안으로 ‘긴급 안전 요청’과 ‘위험 알림’을 추천했다. 이번에는 ‘작업 중지’라는 목적이 생략됐다. 어떤 조합으로도 아쉬움은 끝없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오류’가 아니라 ‘한계’다. 사용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생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장 속에서 적절한 부가 설명을 통해 얼마든지 의미 보완이 가능하다. 이들 우리말 후보 세 가지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선호도의 순위는 새말 모임 위원들의 추천 순위와 일치했다. ‘작업 중지 요청’이 가장 적절한 대체어라는 응답이 전체 86.2%를 차지했고, ‘긴급 안전 요청’(79.0%)이 그 뒤를 이었다. ‘위험 알림’은 68.0%의 지지를 얻었는데, 다른 두 말에 비해 응답 비율이 많이 뒤처진다는 것은 역시 ‘너무 간결한’ 표현에 아쉬움을 느꼈으리라 여겨진다. 반면 ‘세이프티 콜’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률은 75.4%로 압도적이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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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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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사회를 생각하는 ‘사회 가치 병행 사업’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2002년에 설립된 영국의 투자 회사 브리지스벤처스는 영국 사회의 당면 문제를 연구해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했다. 저소득층의 높은 비만율과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면 헬스클럽 이용료가 대폭 낮아져야 함을 알아내고, 이를 사업적으로 실현한 사람과 업체에 투자하게 된다. 이 투자는 성공했고, 높은 수익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다른 저렴한 헬스클럽이 속속 등장해 시장은 더욱 커지고, 소득 수준이나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운동할 수 있게 됐다. ‘돈이 먼저 움직인다’의 저자 제현주는 이것이 ‘임팩트 비즈니스’의 시작이었다고 소개한다. 사회적 영향력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경제적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이라는 의미를 가진 ‘임팩트 비즈니스’라는 외국 새말이 최근 언론에 자주 나온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신조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새말 모임 위원들에게 이 말은 개념이 생소해 다듬기 까다로운 편이었다. 임팩트 비즈니스라는 말 이전에는 임팩트 투자가 있었다고 한다. 임팩트 투자는 사업이나 기업에 투자할 때 수익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나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에 투자하는 행태를 뜻한다. 기존의 투자가 경제적 성과에 집중됐다면 임팩트 투자는 경제적 성과를 넘어 환경적, 사회적 성과까지 추구하는 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성과를 중시한다는 면에서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새말 모임의 한 위원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이라는 의미에서 ‘사회 가치 투자’, ‘사회 가치 사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아 고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고심을 거듭하던 중에 ‘윤리 경영이 윤리만 강조하고 경영은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니 사회 가치 투자라는 말이 대체어로 적절한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고, 단순히 경제적인 이윤 추구의 비중을 더 높게 잡는 일반 기업과 다르게 환경이나 사회적인 가치 실현 부분에 비중을 많이 두는 기업이라는 의미에서 ‘사회 가치 사업’으로 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부가 효과 사업’이라고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논의 끝에 마침내 사회 가치 사업, 사회 가치 투자, 사회 가치 병행 사업, 부가 효과 사업이 다듬은 말 후보로 선정됐다. 병행이 들어간 이유는 병행이 들어가지 않으면 사회 가치만 추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4가지 다듬은 말 후보 가운데 국민은 어느 것을 선택했을까? 국민들의 선호도에서는 ‘사회 가치 병행 사업’이 77%로 가장 높았고, ‘사회 가치 사업’(75%), ‘부가 효과 사업’(66%) 순이었다. 그리고 임팩트 비즈니스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에는 71.4%가 찬성한 것으로 나왔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사회 가치 병행 사업’을 다듬은 말로 선정해 발표했다. 물론 이 말만이 정답일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오징어 게임’ 등의 한류 문화가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숫자가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의 에스콰이어 매거진은 “오징어 게임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고 권했다. “1인치의 자막을 넘어서면 훨씬 더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한 봉준호 감독의 제안에서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이게 무슨 국수주의나 국뽕은 아니다. 우리말 표현은 다채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말을 조금 더 사랑하고, 가능한 한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온 시민이 자기 전문 분야나 직장에서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새말모임에서 후보로 논의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풍요롭고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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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지승호
- 등록일 :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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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제로 코로나’에서 ‘고강도 방역’으로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올바른 말과 거의 올바른 말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만큼 크다”고 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표현하려 할 때 정확한 말을 찾아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2022년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옮긴 이학주 선수에 관한 기사에서 ‘워크에식 논란’이라는 말을 접했다. 생소했다. 검색해 보니 영어 단어 ‘work ethic’으로 ‘노동관, (윤리관으로서) 근면’이라는 뜻이었다. 그냥 ‘선수로서의 성실 논란’ 또는 ‘직업의식 부재’ 등의 말을 사용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워크에식’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의문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보기술(IT) 시대에 들어서면서 외국어로 된 새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말로 대체하기 어려운 용어도 있겠지만, 위의 예처럼 언론조차 큰 고민 없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각보다 많은 언론사에서 ‘워크에식’이라고 적는 것을 보고 입맛이 썼다. 그런데 이런 외국어들을 우리말로 다듬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우리 사회에 제안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달에 두 번 모여 말을 다듬는 이 모임은 ‘새말모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이 모임을 2020년부터 꾸준히 꾸리고 있다고 하는데, 갈수록 전문용어가 늘어나고 복잡한 용어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어서 올해부터는 경제 분야와 의학 분야, 문학 분야 등의 위원이 보강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신조어 하나를 두고 한참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 ‘말모이’의 조선어학회 사람들처럼 보였다. 2022년 들어 두 번째로 열린 새말모임에서 후보로 올라온 새말은 모두 7개. 그중 새말모임 위원들은 ‘제로 코로나’를 골라 다루었다. 제로 코로나는 중국 등 몇 나라에서만 썼던 방역 정책인데, 지금은 중국이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며 한시적으로 사용한 것 같아서 굳이 다듬을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검색하는 용어이므로 다듬을 필요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쓰는 ‘고강도 거리두기’, 중국의 문화나 방역 정책 등의 소식을 모아 알려 주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중국사무소의 자료에 나오는 ‘초강력 방역 정책’, ‘고강도 방역’, ‘초강력 방역’ 등이 우리말 대체어로 제시됐다. 제로 코로나란 ‘무(無) 코로나’라는 뜻이기에 그런 용어들이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나오고, 코로나를 싹 쓸어 버린다는 의미에서 ‘코로나 싹쓸이’, ‘코로나 박멸’이 제안되기도 했다. ‘제로’가 ‘백지 상태’라는 뜻에서 ‘백지 코로나’ 또는 ‘코로나 없애기’가 나오기도 하고, 코로나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의미에서 ‘코로나 봉쇄’나 ‘코로나 원천 봉쇄 정책’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떻게 다듬을 것인지를 차분하면서도 치열하게 토의한 끝에 ‘고강도 방역’, ‘초강력 방역’, ‘백지 코로나’를 다듬은 말 후보로 정했다. 이 후보 낱말을 국민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선호도 조사에서 국민들은 ‘고강도 방역’(84%)이 가장 적절하다고 답했고, ‘초강력 방역’(75.1%), ‘백지 코로나’(28.5%) 순으로 선택했다. ‘제로’라는 단어 뜻과 아무런 상관은 없으나 ‘제로 코로나’ 전체가 하나의 용어로서 담고 있는 의미에 더 많은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제로 코로나’ 등 선언적으로 멋 부리는 말들 대신 정책적으로 분명한 뜻을 담는 말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더 유리하고 정책 의미를 더 많은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코로나 빨리 사라지면 좋겠다. 지승호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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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지승호
- 등록일 :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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