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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프리와 동물 학대 김주만(문화방송 뉴스투데이팀장) 뼈를 드러낸 돼지 사체가 굵은 쇠갈고리에 꿰여 흔들거리며 이동하고 있다. 1차로 손질돼 가죽을 잃은 살덩어리는 이미 돼지의 형상을 잃었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생명이 완전히 끊기지 않은 채 발작하듯 고통스럽게 꿈틀대기도 한다. 몇 년 전 케이비에스(KBS)에서 방영한 돼지 가공시설 방송의 한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소비하는 돼지는 약 1,500만 마리,(여기서 ~이다를 붙이든지, 아니면 마침표로 끊어주든지 할 것. 뒷문장과 호응이 되지 않음)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는 닭은 10억 마리, 소 등 다른 육용 동물을 합치면 연간 1억 1천만 마리의 생명이 우리의 밥상을 위해 소비된다. 물론 불법 도축되는 개나 뱀, 곰 같은 동물은 통계에서 빠졌다. 농장의 닭과 돼지, 소는 그들의 오롯한 생명 자체와 무관하게 오로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한 달도 살지 못하고 도살되는 닭은 물론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수놈으로 판별된 직후 산 채로 분쇄기에 갈아져 또 다른 동물의 먹이로 쓰인다. 살을 쉽게 찌우기 위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최종 목적지인 ‘도살’에 이르기까지 겨우 살아가는 ‘생존 동물’들의 삶도 행복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림 1.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 동물실험도 같다. 신약의 효과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검증하기 위해 동물들은 일상에서 노출되는 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과다하게 약물을 맞고서 온몸으로 약효를 검증해야 한다. 플라스틱 틀 안에 갇힌 토끼의 눈에는 화장품 성분이 직접 주입되고, 개의 입에 흡입용 마스크를 씌워 담배 성분의 위험성을 검증한다. 신약과 화장품, 담배 같은 새로운 기호품이 상품으로 만들어질 때마다 필수적으로 거치는 ‘안전성 검사’는 이렇게 동물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최근 이런 잔혹한 실험/사육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를 내세우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크루얼티 프리’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제품이나 방법을 의미한다. 외국에서는 토끼 문양의 상징이 들어 있는 ‘크루얼티 프리’ 제품 사용을 권하는 윤리적 소비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어 그대로 ‘크루얼티 프리’를 표기하거나, 시민운동을 하는 쪽에서는 ‘동물해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크루얼티’를 그대로 쓰는 것은 외국어 남용인 만큼 직역하여 ‘잔혹성 배제’나 ‘잔혹성 없음’의 의미를 담은 ‘동물복지’, ‘반(反)동물학대’ ‘비(非)동물학대’도 사용할 만하다. 장애인에게 장벽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배리어 프리’나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다는 ‘크루얼티 프리’나 모두 ‘~이 없는’ 상태를 영어 단어 ‘프리’로 표현하지만, 자칫 ‘장벽이 자유롭게 널린’, ‘잔혹함이 자유롭게 자행되는’의 뜻으로 오해할 위험이 있다. 인간이 일부러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하고 도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간적 기대’와 달리 사람은 훨씬 잔인하다.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동물을 때려잡거나, 숨을 남겨둔 채 멱을 따는 식의 야만성은 많이 사라졌지만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전기나 망치를 이용하는 도축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아직 ‘인간적 기대’가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돼지의 이를 뽑고, 맛을 위해(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취 없이 거세가 이뤄지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동물복지’가 점차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각 제약사나 의료기관이 동물실험 결과를 공유해 추가로 진행되는 동물실험을 최소화하고, 국민 간식이 된 치킨이나 유독 삼겹살에 집착해 돼지의 과대 도축을 불러오는 우리의 식습관도 고민해야 한다. 개고기 금지와 관련해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던 만큼, 도축은 불법이고 판매는 합법인 개고기 관련 법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국 등 일부 나라의 경우 동물실험을 통한 안전성 검사를 필수 조건으로 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대체육을 개발하는 등 동물복지를 폭넓게 진행하되 당장 타격이 불가피한 축산농가에도 합의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림 2. 동물복지와 축산농가 타격을 모두 고려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 사회의 언중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회를 직접 반영한다. 인간들이 동물들의 잔혹한 죽음을 ‘비인간적’이라고 부르거나 ‘동물복지’를 운운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동물에게 인간은 가장 잔인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동물의 죽음 앞에 도덕적 부담을 피하려는 알량한 양심임과 동시에, 인간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측면에서 말부터 손질하자. 김주만 문화방송 뉴스투데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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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주만
- 등록일 :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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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외국어의 우리말 대체, 언론이 먼저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 가장 난감한 문제 중 하나는 아마도 ‘망각’일 것이다. 양로원과 청년복지센터 개소식, 지역 축제 등 공식 행사는 물론 개별 복지 서비스 제공까지 주민을 직접 만나는 일이 잦다. 미리 원고를 준비해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즉석에서 인사말이나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때 꼭 해야 할 말이나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당황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이런 일은 주로 해당 용어가 어려운 외국어일 때 많이 발생한다. 그림 1. 즉석에서 연설을 해야 할 때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당황하기도 한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거시기’다. 이 ‘거시기’는 사투리가 아니라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말인데 ‘거시기: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 않거나 직접 말하기 곤란한 사람을 대신하여 가리키는 말’, ‘거시기하다: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상태나 속성을 언급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현장 실무 공무원에게 어려운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을 쓰라고 하는데, 외국어를 대체하기에 적당한 우리말을 찾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누구나 익숙하게 쓰는 외국어 중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치킨처럼 이미 우리 국어 체계에 편입돼 국어 단어로 허용된, 쉬운(?) 외래어가 있는데 해당 외국어가 외래어인지 아닌지 딱 부러지게 판별해 주는 ‘규정’이 없는 것도 실무 공무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예를 들어 공공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는 ‘콘텐츠(Contents)’라는 단어가 있다. 지역 축제를 기획할 때 ‘자발적 주민 참여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 콘텐츠 강화’ 같은 문장에 쓰고, ‘스마트 도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때는 ‘다양한 IT 콘텐츠 강화’ 식으로 쓴다. ‘문화 콘텐츠, 디지털 콘텐츠, 교육 콘텐츠, 공동체 의식 강화 콘텐츠, 킬러 콘텐츠’ 등으로 매우 널리 쓰는데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 따라 번역하자면 ‘내용’, ‘내용물’, ‘내실’ 등이 가능하겠으나 어떤 단어도 콘텐츠가 내포하는 의미를 100% 대변하지 못한다. 우리말로 설명하기는 복잡하지만, 암묵적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 통하는 ‘거시기’가 콘텐츠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와 유사한 단어로 센터(Center)가 있다. ‘주간보호소’나 ‘주간보호터’로 써도 되는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나 ‘도시농업센터’, ‘청년복지센터’ 등 어떤 목적을 위해 물리적 공간이 생겼는데 간판이 애매하거든 그냥 ‘000 센터’로 하면 거의 해결된다. 그림 2. ‘콘텐츠’를 사용한 공공기관 보도자료 이때 반드시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할 상황이 되면 공무원들은 주로 가장 최근 대체어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용례를 찾는데, 공적 기능이 있는 언론 기사를 상대적으로 많이 참조한다. 누가 뭐라고 하면 ‘언론사 기자도 그렇게 썼다.’라고 하면 충분히 면피할 수 있어 그렇다. 그러므로 어려운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쓰도록 하려면 관계 기관이나 단체에서 무엇보다 언론을 향한 계도 활동을 우선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관악구청 청년정책과 구로구청 구정연구관 ‘최보기의 책보기’ 연재 서평가 <저서 『거금도 연가』 『놓치기 아까운 젊은 날의 책들』 『박사성이 죽었다』 『독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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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최보기
- 등록일 :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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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걸린 '이른바 병'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방역 당국의 언어 사용이 매우 신중해졌다. 의미가 모호한 ‘위드 코로나’ 대신 ‘단계적 일상 회복’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다른 부처에도 요청하였다고 한다. 전부터 그랬어야 했다. 국민 가운데 외국어 약자들이 공적 정보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리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 전까지 방역 당국에서는 코호트 격리, 드라이브 스루, 팬데믹, 포스트 코로나, 트래블 버블, 부스터 샷 등의 말을 썼다. 방역 당국이 먼저 꺼냈든 언론에서 먼저 쓰기 시작했든 간에 코로나19 관련 외국어 사용은 코로나 사태의 진면목과 방역 대책을 파악하는 데에 걸림돌이었음에도 뼈저리게 다가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라는 말 앞에서는 국민의 오해를 불러 방역에 긴장이 풀어질 위험이 있다는 점을 느끼고 이 말 대신 일부러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용어 사용을 선택한 것이다. ‘일상 회복’이 ‘위드 코로나’보다 낯선 말이라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말이 의미가 분명해서 공공언어로서는 매우 적합하다. 코로나 사태로 정신없는데, 말 가지고 뭘 자꾸 따지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누구나 잘 알아듣게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방역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 우리말 써야 한다는 민족 감정에서 나온 게 아니다. 어디서든 일을 잘하려면 듣는 사람에게 쉽고 편한 말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제 버릇 남 주기 어렵다고, 2021년 10월 중순에 일상 회복 지원위원회가 출범하면서는 곧 일상 회복 로드맵을 발표하겠노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로드맵’이 공무원들이나 기업에서는 많이 쓰는 말이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쉽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티앤오 코리아의 조사에 따르자면, 일반 국민 34.6%는 ‘로드맵’이 어렵거나 전혀 모르는 말이라고 응답했고, ‘로드맵’ 대신 ‘단계별 이행안’이라는 우리말로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답한 국민은 58.7%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느껴져 나는 매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에 위원회에서는 ‘로드맵’ 대신 줄곧 ‘이행 계획’으로 쓰고 있다. 얼마나 말이 편해지고 분명해지는가? 그러나 언론인들은 국민의 편안함보다는 자기네 명예, 아니 사회적 위신이 더 중요한가 보다. 잘 들어보면 요즘 언론에서는 ‘이른바’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쓴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 이른바 부스터 샷’하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엔 마구 외국어를 쓰다가 국민의 눈총이 느껴지면 슬그머니 그 앞에다 ‘이른바’를 붙인다. 자기가 먼저 주체적으로 한 말이 아니고 남들이 이렇게 부르니 어쩔 수 없이 인용해서 부른다는 식으로. 자기는 책임 없다는 투다. 대체로 방역 당국에서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부스터 샷’이라는 말도 ‘추가 접종’으로 바꾸었고, ‘코호트 격리’도 ‘동일집단 격리’로, ‘트래블 버블’은 ‘여행 안전 권역’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 그런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언론인이다. 그들은 왜 말을 바꾸지 않아서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까? 자신들은 불편한 거 전혀 모르겠다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입에 달라붙은 외국어를 그냥 떼어내기가 쑥스러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그래선 안 된다. 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사실, 예전엔 대개들 ‘소위(所爲)’라고 했는데, 지금은 다 ‘이른바’로 바뀌었다. 물론 그냥 바뀐 건 아니다. 딱딱한 느낌이 권위주의 분위기 피운다고 수많은 시민이 지적하니까 한 20년 사이에 ‘소위’라는 말은 거의 다 사라지고 모두 ‘이른바’로 바뀌었다. 쉬운 말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바뀌어 가는 말이 있는 법이다. 말로 살아야 하는 언론인들이 그 주체가 되면 좋겠다. 이젠 ‘이른바 병’ 좀 털어내자. 이 글은 동아사이언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0795)에 기고하였습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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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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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조형근(사회학자)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쓴 영화 <기생충>의 한 줄 평이다. 그리고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두고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크게 두 입장으로 나뉘었다. 굳이 이렇게 어렵고 현학적인 단어를 써야 하느냐는 비판과, 이 정도 단어도 모른다니 충격이라는 반응이 서로 부딪혔다. 내 느낌은 후자에 가까웠다. 특히 두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놀랐다. 어느덧 나도 ‘꼰대’가 된 것이다. 어느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이동진 평론가는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라는 말까지 인용하면서,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쉬운 말을 써야 한다는 쪽과 정확한 말을 써야 한다는 쪽 사이 인식의 틈을 메우기 쉽지 않다. ‘리터러시’가 문제가 되는 이유다. 언제부터인가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이 말의 원뜻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어로는 ‘문해력’이나 ‘독해력’, ‘이해력’ 같은 말로 옮길 수 있겠다. 여기서 파생되어 “특정 분야에 대한 역량이나 지식”을 뜻하기도 한다. 사전을 보니 리터러시보다 일리터리시(illiteracy), 즉 ‘비문해’라는 단어가 먼저 있었다. 리터러시라는 단어는 19세기 말에 등장해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널리 쓰였단다. 구글이 제공하는 사용 빈도 자료를 보면 20세기 전반에도 별로 많이 쓰이지 않다가, 20세기 후반, 특히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사용 빈도가 많이 늘어난 단어다. 그림 1. 리터러시의 원뜻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빈도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용하는 맥락에도 변화가 있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50년대 이전까지 리터러시라는 말은 말 그대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라는 좁은 뜻으로 사용됐다. 1950년대부터 뜻이 넓어지면서 작가와 독자가 처한 사회나 문화와 분리할 수 없는, 복합적인 맥락들을 고려하는 게 중시되었다고 한다. 옥스퍼드 사전과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리터러시라는 단어는 19세기 말에 만들어져서 20세기 전반기까지는 문해력이라는 좁은 뜻으로만 쓰이다가, 20세기 후반 이후 뜻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쓰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리터러시라는 말이 홍수처럼 난만하다. 리터러시 홀로 쓰기보다는 앞에 다른 단어가 붙어서 함께 쓸 때가 훨씬 많다. 검색으로 대략 스물한 가지 용례를 찾았다. 얼추 성격이 비슷해 보이는 것들끼리 묶어서 나열해 본다. 미디어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컴퓨터 리터러시, 에스엔에스(SNS) 리터러시, 메타버스 리터러시, 인공지능 리터러시, 문화적 리터러시, 이미지 리터러시, 콘텐츠 리터러시, 시네(영화) 리터러시, 게임 리터러시, 다문화 리터러시, 광고 리터러시, 금융 리터러시, 스포츠 리터러시, 피지컬 리터러시, 헬스 리터러시, 육상 지도 리터러시, 멀티 리터러시 등등. 여기서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좁은 뜻의 문해력만 뜻하지는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로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 컴퓨터와 통신, 인공지능 기술 등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새로이 요구되는 지식, 역량의 습득, 강화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모두 현대인의 사회경제적 생활과 민주주의 운영에 필수적인 역량이다.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다. 그림 2. 매체 환경과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리터러시가 여러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사례를 보자. 강준만의 저작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보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수용자의 미디어 사용 능력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 미디어의 올바른 이용을 촉진하는 사회 운동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1992년 미국의 싱크탱크인 애스펜연구소가 주최한 ‘미디어 리터러시 전미 지도자회의’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액세스(접근)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발신하는 능력”으로 정의되었다고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도 찾아본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을 뜻한다.” 컴퓨터 활용 교육과 함께 등장한 용어지만, 인터넷 발달과 모바일 기기의 출현, 소셜 미디어의 확장에 따라 단순히 기기 사용법만이 아니라 정보를 다루고 가공하는 일까지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터러시라는 말의 폭넓은 확장과 맥락을 고려하면 좁은 의미의 ‘문해력’이라는 단어로 옮기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리터러시의 대상은 좁은 의미의 ‘독해’를 넘어선 다양한 역량을 포함하고 있다. 번역 없이 그대로 쓰는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편의를 추구하는 선택의 결과 리터러시라는 말이 의도하는 바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는 데 있다. 리터러시라는 말 자체가 리터러시를 가로막는다. 리터러시가 가장 필요한 보통사람들에게 리터러시라는 말은 무척 낯설고 생소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이라는 말이 번역어로서 충분하지 않다면 새로운 번역어를 고민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전문가의 자세다. 예를 들어 영국 노동자계급의 일상 문화를 다룬 문화연구 분야의 고전인 리처드 호가트의 저작 《The Uses of Literacy》(1957)의 경우를 보자. 번역자 이규탁은 리터러시의 번역어로 교양을 선택하고, 책 제목을 <교양의 효용>으로 옮겼다. 여기서의 리터러시가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서, 대중소설, 신문, 잡지 등의 출판물과 방송, 음악, 영화 등과 같은 ‘교양으로서의 문화’를 읽고 수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위키피디아가 알려주는 것처럼 리터러시가 좁은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 확장되던 20세기 중반의 변화를 포착한 책이고, 또 그에 맞는 번역어라 할 것이다. 교양이 리터러시의 가장 적합한 번역어라는 말이 아니다. 리터러시에 딱 맞는 한국어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데도 공감할 수 있다. 보통명사가 아닌 한 번역에서 1대 1의 정확한 대응어를 찾는 건 원래 어렵다. ‘이해 능력’이든 ‘사용 역량’이든 다른 무엇이든 적어도 리터러시보다는 리터러시에 도움이 되는 번역어들이 있을 것이다. 리터러시 운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리터러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형근(사회학자) 소셜랩 접경지대 소장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섬을 탈출하는 방법> 등의 저서와 <사회적 가치와 사회혁신>, <좌우파사전: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두 개의 시선> 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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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조형근
- 등록일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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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 니스란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소준섭(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우리가 평소 입고 다니는 ‘와이셔츠’라는 명칭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영어 Y 자 모양이라서 그렇지 않겠냐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확신을 하고서 하는 대답이 아니다. 정답은 일본식 영어와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 영어 white shirt의 앞 글자 white를 ‘와이’로 읽어 ‘와이셔츠’라는 이름이 만들어졌고 이 말이 그대로 한국에 들어왔다. 아마 열에 아홉 명은 ‘와이셔츠’에 얽힌 이러한 곡절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 어이가 없는 명칭이다. 우리가 마룻바닥 등에 광택을 내기 위해 칠하는 ‘니스’라는 명칭 역시 마찬가지다. varnish라는 영어의 앞과 뒤를 모두 떼어내고 중간 발음만 내서 ‘니스’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이다. 일본이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낸 일본식 영어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일본식 영어를 화제(和製, 중국이 자신들을 스스로 화(華)라고 부르듯, 일본은 스스로 화(和)라고 부른다.) 영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엉터리 영어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혹은 우리가 만들어낸 ‘콩글리시’라고 생각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티브이(TV)를 보면 ‘텐션’이니 ‘하이텐션’과 같은 자막이 계속 나온다. 이러한 말들도 일본식 영어다. 영어 high tension은 ‘고압’, ‘고전압’이란 의미다. 그래서 일본식 영어 ‘하이텐션’을 사용한 “You are high tension.”이란 문장은 ”“너는 고전압이구나.”라는 엉터리 영어가 되고 만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심코 사용하는 “매너가 없다”의 ‘매너, manner’라는 영어에는 원래 우리가 사용하는 ‘예의’라는 뜻이 없다. 또 “센스가 있네”라는 말의 ‘센스, sense’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감각’이란 의미가 없다. ‘매너’나 ‘센스’라는 말 역시 일본이 마음대로 만들어낸 일본식 영어다. 그림 1. 한국에서 사용하는 외국어 중에도 일본식 영어가 꽤 많다. 물론 모든 외국어를 거부할 수는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 일정한 수준의 영어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영어 가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으며, 더구나 우리가 사용하는 그 영어의 대부분이 엉터리 일본식 영어라는 점은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국가 차원에서 잘못된 일본식 영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근대 이래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국가가 된다’는 의미의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향해온 일본은 서구화를 지향하면서 일상 대화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화제 영어’라 하여 자기들 방식의 영어도 많이 만들어왔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용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결국 국제사회에서 올바른 의미로 통용될 수 없는 영어를 양산하였다. 우리는 이제껏 일본이 만든 그런 ‘비정상적인’ 용어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아무런 의식도 없이 사용해왔다. 우리가 크게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그러한 용어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채 통용되고 있다는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이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만큼, 왜곡된 의미를 주는 말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쓸 게 아니라 소통에 걸맞은 올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바람직하다. 그림 2. 한국어의 자존감을 드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더구나 우리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된 한글이라는 뛰어난 문자를 가진 민족이다. 이제 언어에서도 자존감을 드높일 때다. 비록 짧은 시간 내에 바꾸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지금부터라도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을 꾸준히 바로잡아가는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할 때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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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소준섭
- 등록일 :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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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연결망 시대의 연결터 또는 이음터 정태석(전북대) 인터넷이 공기가 되어버린 시대에 갑작스러운 접속의 끊김은 사람들에게 대혼란을 안겨 준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으로 비대면 수업을 듣고 비대면 시험을 보아야 하는 시대에, 접속 불량이나 접속 끊김은 학생들의 새로운 불안 거리가 되었다. 시험을 보다가 갑자기 인터넷이 먹통 되면 당혹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물론 불안은 학생들만의 몫이 아니다. 인터넷 연결망(network)을 통해 각종 정보를 주고받아야 작업을 하거나 영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불안 거리이긴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공기가 사라져 숨을 쉴 수 없게 된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대부분 사람이 휴대전화 단말기로 접속하는 인터넷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연결과 접속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을 잇는 가상현실의 연결 공간들 가운데, 특정한 목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줌으로써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게 된 공간들은 언제부턴가 플랫폼(flatform)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림 1. 플랫폼의 가장 익숙한 용법은 기차역 승강장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영어에서 플랫폼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용법은 기차역 승강장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영어에서 플랫(flat)은 평평하다는 의미이고, 폼(form)은 모양새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기차에서 오르내리는 평평한 모양의 승강장을 플랫폼이라 부른다. 한편 이런 평평한 기반은 어느 컴퓨터에서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작동하게 하는 공통의 기초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때 운영체제로서의 플랫폼은 ‘공통운영기반’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한편 게임산업 분야에서는 개인용 컴퓨터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식 단말기, 게임용 기기에서도 작동하여 어디에서나 어느 기기를 통해서도 똑같은 게임에 접속하여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것을 멀티 플랫폼이라 부른다. 이것은 좀 길지만, 다중 공통운영기반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공통운영기반과 유사한 의미의 플랫폼이라는 용어는 물론 컴퓨터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차량이 공유하는 기본 골격을 플랫폼이라 부른다. 공통의 설계를 통해 차바퀴와 차체를 연결하는 현가장치(서스펜션), 주행 방향을 조작하는 조향장치(스티어링), 원동기(엔진)의 동력을 차바퀴에까지 전달하는 동력전달장치(파워트레인) 등 다양한 부품들을 공유하게 되면, 약간의 변형을 통해 다양한 모형의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고 기술적 완성도도 높일 수 있어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도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회사마다 공유의 범위나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렇게 공통의 설계를 통해 플랫폼을 갖추면 자동차 생산에서 다양한 이점을 누릴 수 있는데, 이때 플랫폼은 자동차 생산의 ‘공유작업기반’이나 ‘공통작업기반’으로 부를 수 있겠다. 좀 줄여서 부른다면 ‘공유틀’이나 ‘공통틀’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한편 오늘날 점점 널리 퍼지고 있는 플랫폼의 용법은 플랫폼 기업, 플랫폼 노동, 플랫폼 자본주의와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플랫폼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공간이라는 뜻인데, 플랫폼 기업은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연결 활동을 중요한 이윤 획득의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은 앱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연결되는 거래를 현실 공간에서 실현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플랫폼 자본주의는 플랫폼을 이용한 경제활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자본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그림 2. 인터넷의 가상공간으로서 플랫폼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서로 소통하려는 개인과 개인, 사업자와 사업자, 판매자와 구매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 카카오톡,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등은 다양한 욕구를 지닌 개인들을 필요에 맞춰 서로 이어주는 장치들이 된다. 각종 음식 배달 앱들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가상공간에서 음식 판매업체들을 모아 홍보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이용을 유도하게 되면 판매자와 소비자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는데, 소비자들이 원하는 업체를 찾아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고 개선해나가면, 이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이 된다. 카카오택시나 네이버택시는 택시 플랫폼의 또 다른 형성 사례를 보여준다. 그들은 누리소통망(SNS), 관문(포털) 서비스, 전자우편 서비스 등을 통해 이용자들을 모으고 지도검색 및 운전 안내 서비스를 제공한 후, 이들이 택시 운전자와 승객으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가상공간과 앱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앱을 이용하는 택시 운전자와 승객이 늘어나면서 택시 이용이 서로 편리해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앱이 없으면 택시를 이용하기가 불편해질 정도로 거대한 택시 플랫폼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마치 기차역 승강장이 가상공간으로 옮겨진 듯하다. 기차역 플랫폼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온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편리하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래서 평평한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출발지에서 온 기차 승객들이 서로 다른 목적지로 가는 기차로 옮겨 탈 수 있도록 서로 이어주는 곳이 기차역 플랫폼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것은 가상공간에서 곳곳의 판매자들과 곳곳의 구매자들, 곳곳의 택시 운전자들과 곳곳의 승객들을 서로 이어주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래서 인터넷의 가상공간으로서 플랫폼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플랫폼을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이음마당’, 국어원에서는 ‘거래터’라는 말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이나 플랫폼 기업을 이음마당 노동, 이음마당 기업으로 부르는 것은 좀 어색하며, 거래터로 부르는 것도 단지 거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사용이 제한적이다.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면, 기능의 측면에서는 연결, 이음, 연계, 중계, 거래라는 의미를, 공간의 측면에서는 터, 장, 마당, 창구라는 의미를 떠올리는데, 이들 중에서 ‘연결’이나 ‘이음’과 ‘터’를 결합한 말이 좀 덜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서로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연결터’, ‘이음터’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의미를 전달하기가 좀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플랫폼처럼 세 음절이라는 점에서 발음이 덜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지금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그 의미가 모호한 가운데 이미 다양하게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쉽지 않은 말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겠지만 이제 ‘연결터/이음터 노동’, ‘연결터/이음터 기업’, ‘연결터/이음터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플랫폼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해보면 좋을 듯하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의 입에 붙으면 좀 더 널리 통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태석 전북대학교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비판사회학회 <경제와사회> 편집위원, 한국환경사회학회 감사,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역임 저서로 “시민사회의 다원적 적대들과 민주주의”, “행복의 사회학”, “한국인의 에너지, 평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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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정태석
- 등록일 :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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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크홀’의 제목이 ‘땅꺼짐’이었다면? 최형용 /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자는 주장에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원래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는 일을 흔히 접하곤 한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전화’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전화’도 우리 고유어는 아닐 뿐만 아니라 근대 문물의 수용 과정에서 우리의 주체성이 발현된 경우도 아니므로 적당한 예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텔레폰’이 아니어서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 보면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순화 작업(순화 작업의 결과물인 ‘순화어’를 더 쉽게 ‘다듬은 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다듬은 말’은 ‘순화어’를 ‘다듬은’ 말이기도 하다.)은 순화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말을 꾸준히 사용하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직접 사용하는 언중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잘 만들어낸 순화어도 언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정착할 수 없어 생명력이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중들이 다듬은 말을 잘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은 다듬은 말의 정착 여부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싱크홀’은 이러한 점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비전문가라 작품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어렵지만, 이 영화는 200만 명 이상이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코로나19 상황의 위중성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수치는 흥행 성적표로는 매우 훌륭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그림 1. 영화 ‘싱크홀’ 홍보물 우리의 관심은 외래어나 외국어의 순화이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살펴보자면, 특정 지역이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으로 꺼지는 현상을 ‘싱크홀’로 표기하여 제목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관심이 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영화 속에서 이를 속보로 보도하는 뉴스 장면에서는 ‘싱크홀’이 아니라 ‘땅꺼짐’으로 보도하였는데, 이 장면에 주목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듯싶다. 이는 곧 언론에서는 ‘싱크홀’을 ‘땅꺼짐’으로 순화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제목이 노출된 정도에 비할 수 없이 순화어가 노출된 찰나의 순간을 보며 현재 우리의 다듬은 말 정비 사업이 이러한 비대칭적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많은 유관 단체들에서 외래어나 외국어 순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손에서 탄생한 순화어는 그 자체로는 아직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차적으로 전문가의 손에서 탄생한 순화어는 일반 언중들이 사용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사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일반 언중들이 선택하여 탄생한 순화어들이 정작 일반 언중들의 외면으로 정착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핫팬츠’에 대한 순화어로 선정된 ‘한뼘바지’가 이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한뼘바지’는 언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널리 쓰이기에 알맞은 조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300개 정도의 순화한 말들 가운데 《요긴하게 쓸 만한 다듬은 말 61개》에 ‘한뼘바지’가 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하는 바 크다. ‘USB메모리’를 ‘정보막대’로 순화한 것도 언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제는 ‘막대’ 모양이 아닌 ‘USB메모리’가 적지 않아 ‘정보막대’라는 다듬은 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즐기는 노년층’의 의미인 ‘웹버족’에는 ‘실버’가 들어가는데 이를 축자적으로 반영하여 ‘은빛누리꾼’이라고 바꾼 것도 역시 선택을 받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우리말에서 ‘은빛’은 아직 ‘노년층’을 의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림 2. 다듬은 말 중에서도 언중의 선택을 받은 말이 살아남는다. 이들에 비하면 ‘싱크홀’을 다듬은 말인 ‘땅꺼짐’은 잘 만들어진 것이면서 잘 정착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원말에 ‘홀’이 뒤에 있으니 ‘꺼진구멍’처럼 축자적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만, “싱크홀 현상이 발생했다.”처럼 쓰이는 경우 ‘싱크홀 현상’을 ‘꺼진구멍 현상’으로 바꾸어 쓰는 것은 어색하다. 따라서 ‘꺼진구멍’보다 ‘땅꺼짐’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싱크홀’이나 ‘꺼진구멍’에는 꺼진 대상인 ‘땅’이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드러낸 ‘땅꺼짐’이 의미 전달의 측면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싱크홀’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나는 ‘포트홀(pothole)’을, ‘땅꺼짐’을 참조하여 ‘땅파임’로 순화한 것도 서로 짝이 맞아 오히려 원어보다 좋은 것 같다. 물론 그 의미를 더욱더 잘 전달하기 위해 ‘땅꺼짐’의 ‘땅’ 대신 ‘도로’로 바꾸는 정도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림 3. 땅꺼짐(싱크홀)의 모습 그림 4. 땅파임(포트홀)의 모습 앞서 순화어의 성패가 정착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는데 사실 ‘땅꺼짐’은 그 나름대로 사용 빈도가 높은 순화어에 해당한다. 그러나 만약 2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제목 ‘싱크홀’이 ‘땅꺼짐’이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땅꺼짐’이라는 순화어를 정착시키는 데 이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바꾸어 영화의 제목을 ‘싱크홀’이 아니라 ‘땅꺼짐’이라고 했다면 관객 수에 영향이 있었을까? 너무 이상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겠지만 이렇게 영화 제목을 바꾸었을 때 더 많은 관객이 찾는 날이 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이 쏟아지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다듬는 과정에서부터 ‘정착’을 염두에 두는 발상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최형용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학술지 <형태론> 편집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국어문화원 원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역임. 저서로 “사잇소리 현상과 사이시옷 표기에 대한 계량적 연구”, “한국어 형태론”, “정확한 화법과 미디어 언어 분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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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최형용
- 등록일 : 202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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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깐부' 맺은 영어 남용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에서 나온 ‘깐부’라는 단어가 화제다. 깐부는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할 때 한 편이나 동지를 뜻하는 은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만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일본어 ‘가부시키’(かぶしき·株式)의 ‘가부’가 변한 말일 가능성이 크다. ‘가부’는 과거 일본의 도매상인들 동업조합을 부르는 말이었고, 투자한 지분만큼 얻는 권리를 ‘가부시키’라고 칭했다. ‘가부’는 일종의 경제공동체를 뜻하는 말이다. 여러 지역에서 어릴 적 “가부 맺자”, “가부하자”, “가부 걸자”고 썼던 일본어가 세월이 흘러 ‘깐부’라는 말로 변해서 다시 등장했다는 얘기다. 말소리의 유사성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다. 비탈을 뜻하는 고바이가 ‘코우바이(勾配·こうばい)’라는 일본말의 찌꺼기인 것처럼 말이다. 한류 절정 드라마에 웬 일본말 찌꺼기냐 싶지만, 우리 살아온 형편이 그렇다. 드라마 제목인 ‘오징어 게임’은 어떤 동네에서는 ‘오징어 가이생’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싸움을 시작한다’는 뜻의 일본어 ‘가이생’(開戰개전)에서 왔던 말이었다. 놀이마저 일본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여러 자료에서 ‘오징어 놀이’를 민속놀이로 소개하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가이생’이라고 부르던 습관이 한동안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림1. 오징어게임 '우린 깐부잖아' 장면. (출처: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한패’, ‘한편’ 대신 일본어 ‘가부’를, ‘놀이’ 대신 일본어 ‘가이생’을 쓰던 우리 문화가 이제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다. 놀랍고 칭송할 만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가부’가 ‘깐부’가 되고 ‘가이생’이 영어 ‘게임’으로 변한 이 뒤섞임이 문화 현상으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런 말들의 유입과 변화에 담긴 슬픈 역사가 떠올라 그저 마뜩지만은 않다. 그것이 어찌 자유롭고 평등한 문화 교류였겠는가. 한류와 국뽕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일본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놀랄 때가 많다. 언론과 공공기관, 기업에서 쓰는 영어도 대개 일본에서 쓰는 걸 따라 한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국 지자체에서 그렇게도 무수히 벌이는 각종 ‘챌린지’, 기계에다 사용하던 말을 사람에게 적용한 ‘스펙’, 고위 공직자들도 자주 사용하는 ‘스케일업’, 말로만 수준을 올려버리는 ‘레벨업’ 등 영어의 원래 의미와도 다르게 일본이 자기네 편의대로 만들거나 의미를 붙여 사용하는 일본식 영어가 정말 많다. 국제관계학 박사 소준섭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일본에서 쓰던 대로 우리가 따라 쓴 영어 단어는 테이크아웃, 스킨십, 에스엔에스, 프로듀서, 베드타운, 패널, 아메리카노, 원룸, 콜라보, 매너모드, 플러스알파, 셀럽, 에코백, 체크포인트, 스킬업, 파워업, 마이너스 성장, 인프라, 해프닝, 헬스센터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미국의 지배가 미친 영향인지 세계화 욕망 탓인지, 메이지 유신 시절 서양의 문물과 개념을 번역하던 그 도전적인 창의력은 어디 가고 오늘날 일본 사람들은 영어 단어 쓰길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쪼가리 영어를 우리 언론과 공무원들도 그대로 가져다 쓴다. 일본이 쓰는 영어라면 우리 또한 써도 된다는 ‘깐부’라도 맺은 것일까?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주장도 일본에서 먼저 일어난 걸 따라 했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일본을 벗어났지만, 어떤 건 여전히 일본을 따라 한다.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영어 남용을 따라 한다니,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고문으로 실렸음을 밝힙니다. (2021년 10월 21일)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03766629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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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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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등록자 : 소준섭
- 등록일 :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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