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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물과 언어 – ‘모빌리티’를 보면서 최기영 / 인하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최기영 인하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전 인하대학교 국제화사업단장, 현 교무처장) 무인기 개발, 항공우주관련 각종 정책 자문 등 업무 수행 몇 해 전에 유학생 유치와 교류 확대의 목적으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중앙아시아는 소련이 해체된 후 독립한 5개의 국가로 구성된 지역으로, 과거에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투르크(돌궐) 사람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들 국가의 언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서로 간의 일상적 소통은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이 출장길에 우즈벡인 직원 한 명과 같이 다녔다. 우즈벡은 과거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로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오랜 기간 동안 동서 교역의 중심이었던 만큼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산다. 중국에 50여 개의 소수민족이 있다고 하는데, 우즈벡은 인구 3천만 명에 150개가 넘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언어도 다양해서 우즈벡인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안다. 공용어인 우즈벡어를 기본으로 서남쪽은 이란과 가까워 페르시아어까지 함께 쓴다. 오랜 기간 소련에 속해 있었기에 도시에 사는 노인들은 러시아어가 더 편하기도 하다. 동행했던 이 친구는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현지 한국 회사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한 덕에 가끔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말을 잘했다. 게다가 러시아어와 영어도 잘했기에 어느 나라를 가든 통역으로 든든했다. 한 번은 함께 터키에 갔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그쪽 운전기사와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터키어도 배웠느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터키어도 같은 어족에 속해서 기본적인 말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언어에 특별히 소질이 있는 친구여서 그러려니 했지만, 궁금해서 어떤 말들이 주로 다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비행기’를 예로 들었다. 비행기를 터키어로는 ‘우착 uçak’이라하는데, 우즈벡어로는 ‘사말리오트 samolyot’라고 한다. 우즈벡어 samolyot는 러시아어 ‘써말리오트 самолет’에서 왔다. 우즈벡이 소련에 편입된 것이 1924년이고, 비행기가 우즈벡에서 일상적으로 날아다닌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니 소련이 비행기와 함께 들여온 러시아어가 우즈벡에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문물의 발달과 함께 단어들은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고, 그 문물이 수입될 때 단어들도 함께 들어오기 일쑤다. 사신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궁전의 사신도 우리가 요즘은 드론이라는 걸 자주 보게 되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그 말을 쓴다. 드론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인기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영어권에서는 Unmanned Aerial Vehicle 혹은 줄여서 UAV라고 쓰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하면 무인항공기 또는 무인기가 되는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처음 성공한 것이 1903년이었는데 불과 10-20년 후에 혼자서 날아가는 무인기가 등장했다. 물론 그 당시의 무인기는 주로 군사용이고 성능도 지금보다 형편없었지만, 이처럼 무인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1930년대 영국군은 무선 조종기로 날리는 비행기를 개발해서 훈련에 쓰고 있었고, 그걸 본 미국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무인기를 개발했다. 당시 영국의 무인기 이름은 Queen Bee(여왕벌)였는데 이걸 개량한 미국인들은 자기들 무인기에 Drone(수벌)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여기서 우리가 쓰는 드론이라는 용어가 유래하였다. 취미용으로 가지고 다니며 사진이나 찍고 하는 드론이 이제는 승객을 싣고 복잡한 도심을 가로질러 다닐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아직은 개발 단계이지만, 전문가들은 이 시스템이 도심의 교통체계를 바꿀 혁명적 수단이자 미래의 주요 산업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이런 항공기를 언론에서는 ‘드론 택시’라고 부르고 전문가 집단에서는 Urban Air Mobility(도심 항공), 줄여서 UAM이라고 한다. UAM-Cover: 미래 도심 항공운송 체계 (미국 나사NASA)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점점 더 빨라지면서 새로운 물건과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그에 맞게 새로운 말들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도심 항공을 포함한 미래교통체계를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는 것이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용어다. 물론 이 말도 우리보다 좀 더 일찍 이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시작한 미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지능형 교통체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능형 smart’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해보면 자율주행 기능이 들어가서 교통상황을 인지하며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데려다 줄 수 있는 수단인데, 실제 스마트 모빌리티는 이 범위를 넘어서 차량 공유, 친환경 등의 개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전동킥보드 같은 이동 수단을 언론에서는 퍼스널 모빌리티라 부르는데, (교통 안전을 담당하는) 경찰에서는 이를 ‘개인형 이동장치’라 부른다. 하나의 용어가 사람마다 분야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나라마다 쓰임새가 다를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교통수단을 나타내는 transportation과 구별하여,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체계를 모빌리티라 정의하기도 한다. 내가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빌리티를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가 있어도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 있으면 모빌리티는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파생 기술과 제품이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용어와 물건 또는 기술을 1 대 1로 맺어주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OPPAV: 풍동시험 중인 미래형 개인비행기 (항공우주연구원) 블록체인, 오버더탑(OTT), 메타버스, ... 어떻게 보면 우리 일상 속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들인데 그 단어만 봐서는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새로운 용어와 기술에 대한 적응도는 세대와 계층을 가르는 경계석이 될 것이다. 국어의 위기다. 우리말의 구조야 바뀌지 않겠지만, 새로운 문물에 관련된 단어들은 외국어 또는 신조어로 가득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개념조차 사람마다 다르게 쓰일 수 있다. 나라에서 모든 단어를 정의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핵심이 되는 사물, 기술, 개념에 대해서는 사회가 공용으로 쓸 수 있는 표준 단어의 제정이 필요하다. 마치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등 다양한 이름이 혼용될 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용어로 통일했던 것처럼. 그리고 ‘모빌리티’의 쓰임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를 사용 분야에 알맞은 구체성과 추상성을 담은 용어로 번역하려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견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하나의 말로 1:1 대응이 불가능하니 그냥 외국어를 쓰자는 쪽으로 기울어져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에 한계를 자초할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 때 북한과 협력해서 하면 어떨까 제안한다.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엄격하게 한글전용주의를 실시하고 있고, 외국어를 가급적 우리말로 뜻풀이해서 쓰고 있다. 어떤 단어들은 그 기발함에 놀라기도 한다. 앞의 우즈벡-터키어의 분화에서 본 것처럼 언어는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문물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겪고 난 후에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언어의 이질감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질 것이다. 우리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언어의 사용이 필수이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나날이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 세계가 인터넷과 편리한 항공운송 체계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만큼 새로운 개념이 늘어나고, 신조어도 많이 만들어진다. 정부는 동일한 개념에 동일한 용어를 써야 하는 기본 방침을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정책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우리 민족 전체가 함께 쓸 수 있는 말들이 정립되면 더욱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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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최기영
- 등록일 :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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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퓰리즘을 ‘대중주의’라고 말하자 정태석 / 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전북대학교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비판사회학회 <경제와사회> 편집위원, 한국환경사회학회 감사,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역임 저서로 “시민사회의 다원적 적대들과 민주주의”, “행복의 사회학”, “한국인의 에너지, 평등주의” 요즘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의미는 대체로 부정적인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퓰리즘이 엘리트나 소수 지배세력이 아닌 다수의 일반 사람들을 지향하는 용어임에도, 실제로 일반 사람들은 이 용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을 이해하기 쉬운 통일된 번역어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지만,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해지기에 차라리 그냥 영어식 표현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학자들은 번역어 선택 자체가 논쟁적이어서 논란을 피하려고 영어식 표현을 선호하기도 한다. 포퓰리즘의 ‘포퓰러’(popular)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거나 공감하거나 추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영어로 ‘people’이라고 하며, ‘인민’으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많은 사람(people)이 좋아하거나 공감하거나 추구하는 것을 제공하려는 정치적 이념이나 전략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포퓰리즘이 인민을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인민주의’로 번역할 수도 있겠고, ‘대중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대중주의’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도밍고 페론 그런데 번역어 선택을 위해서는 포퓰리즘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국내 포퓰리즘 논쟁은 1980년대 남미의 민주화 이론과 종속이론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1946년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육군 대령 후안 도밍고 페론은, 집권 후 친노동자 정책을 실행하여 정치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 포퓰리즘은 대통령이 지방 토호 중심의 과두제적 엘리트 지배에 맞서 노동자 대중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정치이념이자 전략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포퓰리즘은 ‘민중주의’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이때 민중은 좀 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민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집권세력의 정치전략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기에,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때 민중이 동원되는 대상으로 규정되면, 민중은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남미의 포퓰리즘이 국내에 소개된 시기를 생각해 보면, 포퓰리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80년대 초는 민주화의 기회를 쿠데타로 억누르고 등장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전두환은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해 부정부패 척결, 정의사회 구현, 과외 금지, 프로야구 출범, 문화적 개방, 경제성장 등 대중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가치나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또 추구하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노동자들의 권익 요구에 대해서는 지속하여 억압하였다. 여기서 인기영합적 정책을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끌어내고자 한 전두환의 정치전략은 포퓰리즘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대중영합주의’나 ‘대중추수주의’로 번역되었고,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전통을 이어간 보수 정치세력의 인기영합적 정책들을 비판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물론 지금은 또 다른 맥락에서 정치적 상대 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일반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포퓰리즘은 기본적으로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정치이념이자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세력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정치세력들은 서로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전략적으로 동원하게 된다. 그래서 서로의 정책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 인기영합적이라거나, 단기적이고 임시방편적이라거나 하면서 비난하게 되고, 이런 부정적인 맥락에서 상대방의 이념이나 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려고 한다. 이처럼 포퓰리즘에 대한 양면적 해석이나 규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현실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포퓰리즘은 그 본래의 의미, 즉 엘리트 지향에 맞서 ‘대중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대중주의’로 번역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민주의’나 ‘민중주의’는 아무래도 긍정적인 의미에 치우쳐 있고, ‘대중영합주의’나 ‘대중추수주의’는 부정적인 의미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포퓰리즘’이 그러하듯이 정치적 맥락에 따라 또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번역어로 ‘대중주의’가 가장 적절해 보인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다 보면, 아마 그 의미도 더 친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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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정태석
- 등록일 :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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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슈퍼위크’가 밝았다고? 이광연 / 와이티엔(YTN) 앵커 2022년 3월의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예비 주자들의 대선 출마 선언이 잇따르면서 대선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와이티엔을 비롯한 언론들은 대선 주자들의 행보나 일정, 이들의 정책 공방을 코로나19 관련 속보와 함께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치부 뉴스를 검색해 보면 언론들은 지난 6월 마지막 주를 이렇게 규정한다. 대선 슈퍼위크. “대선 슈퍼위크가 시작됐습니다.” “대선 주자들 총출동, 슈퍼위크 밝았다.” 실제로 6월 마지막 주에 대선 정국이 크게 출렁거렸다. 여당은 예비후보 등록 시작과 함께 일부 후보들이 단일화를 발표했고, 야권에서도 대선 출사표를 던지거나 현직을 사퇴하며 정계 진출을 준비하는 등 분주한 일정이 이어졌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어떤 주도 ‘슈퍼위크’가 아닌 주는 없을 정도이지만) 정치를 비롯해 부서별로 승인된 기사가 방송국에서는 ‘뉴스 런다운’이라고 부르는 진행표에 올라오면 앵커들은 미리 읽어보고 피디들은 자막을 준비한다. 이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타를 확인하고 오독을 줄이기 위한 정교한 과정을 거치는데 시청자에게 낯선 용어나 불필요한 외국어 단어가 없는지도 매의 눈으로 걸러낸다. 피디나 앵커 눈에 띄면 가차없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대체한다. 20년 전 와이티엔에 입사하고 한글문화연대를 통해 우리말글에 대한 애정과 개념을 자리 잡으면서 나름대로 뉴스 진행을 할 때만큼은 어려운 용어나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발음하기도 쉽고 뉴스 전달력도 좋아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례없는 위기 상황이 길어지면서 외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신조어들이 뉴스에 등장하고 있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고도 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 이를테면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우울감으로 언택트 문화는 비대면 문화로, 낯선 한자어인 비말은 침방울로 말이다. 이 밖에도 부스터샷은 ‘추가 접종’으로, 홈코노미는 ‘재택경제 활동’으로 리셀 테크는 ‘재판매 투자’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침방울과 추가 접종을 발음해 보자, 진행자는 말하기 쉽고, 시청자는 듣기에 편하다. 그런데 슈퍼위크처럼 마땅한 우리 말을 찾기 어려운 외국어 단어가 등장하면 고민이 길어지고 때론 난감하다. 슈퍼위크란 대단히 좋은 한 주, 정점을 찍는 한 주, 더 중요한 일이 있는 한 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사전적 의미와는 별개로 정치나 외교 기사에서 쓰이는 ‘슈퍼 위크’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긴장감을 대체할 우리 말을 찾지 못해 무기력하게 ‘대세’를 따르기도 한다. 팩트 체크나 네거티브 공방도 비슷한 예이다. 우리말로 바꿨을 때 오히려 어색해지거나 단어의 ‘숨은 뜻’까지는 전달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쉬운 우리말 쓰기에 대한 강박 수준의 의지가 현실을 못 따라가기도 한다는 점을 고백한다. 더불어, 인용하거나 보도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불가피하게 외국어를 대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노출할 수밖에 없는 고충도 양해를 구하고 싶다. 물론 이와 같은 현실과 고충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사실과 정보 전달이 목적인 뉴스 프로그램에서 우리말로 표기하고 발음하는 것은 방송인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와이티엔 역시 앵커와 기자, 피디 등 뉴스 제작에 관련된 구성원들은 일부 대체가 어려운 경우를 빼고는 우리말을 우선순위에 놓고 기사를 작성하거나 편집한다. 난해한 용어와 외국어 단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방송을 보는 시청자 중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팩트 체크’ 나 ‘슈퍼 위크’를 뉴스에서 듣고 혹시라도 소외되는 시청자가 있다면,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 기사를 쓰거나 읽을 때 최소한 '사실 확인', '절정의 한 주'라고 우리말 뜻풀이를 넣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알 수 없는 외계어들 때문에 방송언어가 심각하게 오염되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광연 와이티엔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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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광연
- 등록일 :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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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실리테이터, 이제는 ‘소통지도사’ 문제갑 문제갑 농어촌 소통지도사 협동조합 교육 강사 광주광역시청 사무관 역임 저서 <시티즌오블리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 참여 공론화 토론회가 전국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신고리 5, 6호기 재개 문제부터 대학입시제도 개선, 헌법 개정, 미세먼지 대책, 대구·경북 행정통합, KBS의 공적 책무와 같은 주제들이 정부 부처 공직자들 탁자에서 벗어나 국민이 참여하는 숙의형 정책 토론 마당에 폭넓게 펼쳐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가운데, 몇 해 전만 해도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하던 대면 회의는 이제 열기 힘들다. 비대면 화상회의로 전환되면서 회의를 주관하는 주최 측의 고민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은 화상회의에서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또는 모더레이터(moderator)로 불렀는데 회의에 참여한 사회자들조차 이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퍼실리테이터는 ‘회의 촉진자’로서, 회의 참여자들의 소통과 협력이 원활하도록 돕는 사람을 뜻한다. 모더레이터는 참여자들의 의견을 조정 중재하여 문제 해결을 돕는 사람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두 용어를 때때로 혼용하기도 한다. 농어촌공사 퍼실리테이터 자격증 우리나라 농어촌 마을 단위 공동사업이 잘 추진되도록 돕는 기관으로 농어촌공사가 있다. 마을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회의는 사업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농어촌 주민들은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고, 마을사업은 모두가 참여하고 함께 결정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농어촌공사는 무엇보다 회의를 도와주는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지난 2017년 농어촌공사가 주관하는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재수 끝에 자격증을 땄는데, 이 자격을 얻은 사람을 부르는 공식 이름이 ‘농어촌 퍼실리테이터’였다. “현장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포럼에서는 우리 마을의 테마와 미션 그리고 비전을 세우고, 마을 자원을 활용해서 어떤 사업을 할지 의논할 거예요. 저는 오늘 회의가 잘되도록 도와드릴 퍼실리테이터입니다.” 마을 회의에 참여하는 주민들 대부분은 60대, 70대 어르신들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80대 이상 되는 분들이 많아 60대는 ‘어르신’ 호칭도 어색한 지경이긴 한데, 이분들 앞에서 포럼(forum)이니 테마(theme)니 미션(mission)이니 비전(vision)이니 하는 말은 아무래도 어렵다. 더욱이 ‘퍼실리테이터’라는 말은 뜻은 고사하고 발음조차 쉽지 않다. 주민들은 대뜸 이렇게 묻는다. “포럼?” “테마니 미션이니 비전이니 그게 다 뭐여?” “퍼... 뭐라고?” <2016년 전남 신안군 자은면 구영마을에서 열린 마을 회의 장면> 지난 몇 년 동안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때마다 뜻을 설명하느라 관계자들 모두 수고가 많았다. 다행히 얼마 전 농어촌공사는 이 같은 현장 사정을 헤아리고는, 공모를 통하여 퍼실리테이터라는 명칭을 알기 쉬운 말로 바꾸기로 했는데, 그 새로운 이름은 ‘소통지도사’였다. 바뀌자마자 이미 퍼실리테이터라는 말에 익숙해진 활동가들은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소통지도사라 하느니, 그냥 퍼실리테이터로 부르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겸양이 미덕인 우리 정서에 비추어 볼 때, 나이 어린 사람이 웃어른에게 ‘지도’ 운운하는 것이 여간 송구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생소한 ‘퍼실리테이터’라는 이름도 몇 년간 쓰다 보니, 어색한 태를 벗어버리고 일상 언어가 되었듯이 ‘소통지도사’도 그렇게 익숙해지리라고 낙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단 퍼실리테이터라는 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고 널리 쓰는 것은 민족의 얼을 지키는 가장 근본 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있다면 문화체육관광부일 것이다. 되도록 정부에서 쓰는 행정용어나 이름 정도는 우리 말과 글을 쓰도록 행정지도(!)하면 좋지 않을까. 말 나온 김에 하자면, 적어도 대통령 신년사나 광복절 기념사 정도는 순우리말로 들어보고 싶다. 이 연설문을 초중고에서 읽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우리말글을 새기는 기회로 삼는다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 것인가. 우리 말글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해질 터이다. 온 세계가 한류에 감동하고 우리의 말과 글을 배워 보겠다고 난리인데, 정작 우리나라의 말과 글은 국적 없이 떠도는 외국말투성이 형국이니, 참으로 한류 광풍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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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문제갑
- 등록일 :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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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을 ‘사회 가치 경영’으로 부르자 강민정 / 한림대학교 사회혁신경영전공 교수 ‘ESG’가 화두다. 이에스지(ESG)가 뭐지? 최근 ‘SG워너비’를 본뜬 ‘MSG워너비’ 가 있다던데 이에스지는 후속 그룹 이름인가? 에스지워너비는 2천년대 중반 많은 인기를 끌었던 남성 3인조 가수 그룹의 이름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음악 세계를 잇고 싶다는 뜻이라고 들었다. 한때 에스지워너비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필자이기에 그 뜻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뜻을 아는지라 그들의 음악을 더 좋아했다. 이에스지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꽤 알려진 개념이기에 엠에스지(MSG)나 에스지워너비와 헷갈릴 일은 없으나, 시민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염려되어 주위에 물어보았다. 잘 몰랐고 관심도 없다고 한다. 물론, 전문 분야에 대해 모든 사람이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에스지는 다르다. ‘ESG’는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 기준(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criteria)의 약자로,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들을 기업의 성과 평가에 적용하는 기준을 뜻한다. 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 평가 기준을 고려한 경영이라는 용어를 ‘ESG 경영’이라고 부른다. 어떤 기업이 ‘ESG 경영’을 하겠다는 말은,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 기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기업의 건전한 지배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경영활동의 주요 의사 결정이 전문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벌 기업이 지배주주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지배구조를 왜곡하는 행태는 ‘ESG’ 중 기업지배구조를 뜻하는 ‘G’의 기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투명하고 전문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오늘날 많은 기업이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전문적이고 투명한 의사 결정 체계를 갖추었다면 ‘G’ 영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에스지 경영은 새로운 용어 같지만, 그간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나타내어 온 용어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은 기업 활동과 이해관계자의 관계에 사회적·환경적인 고려 사항들을 통합해 나가는 자발적인 시도를 뜻한다. 공장 폐수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미세 먼지 배출을 최소화하는 활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은, 기업이 사회적·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성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학 교실에서는 물론 기업의 전략경영, 사회공헌 담당자들 사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개념으로 ‘공유가치창출(CSV)’이 관심을 받아 왔다. 세계적 기업인 제네럴 일렉트릭스(GE)가 ‘친환경 상상(Ecomagination)’을 통해 환경과 의료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 확충 및 신제품 출시로 사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대표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그것이다. 기존의 ‘CSR’, ‘CSV’가 경영학 연구자들이나 경영인들 사이에서 다뤄지던 상황과는 달리, ‘ESG 경영’은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꽤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그 덕에 일반 시민들에게도 훨씬 많이 노출되고 있다. ‘ESG 경영’이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게 된 것은 기업이 맞닥뜨리는 긴장감의 측면에서, 그리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 측면에서 기존의 ‘CSR, CSV’와는 다른 차원으로 기업과 사회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에스지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제기된 개념이다. 기존에는 투자자가 재무적 성과만을 중시하였다면, 이제는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성과들을 고려하여 투자하겠다는 흐름이 생겨났다. 그리고 ‘CSR, CSV’ 접근에서는 이에스지 요소들이 성찰과 전략의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경영활동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투자도 못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짚을 것이, 시민들은 넓은 의미의 투자자이자 이해관계자로서 이에스지 경영의 당사자이다. 시민들은 국민연금의 가입자이자 수혜자로서 이에스지 경영 관점에서 연기금 투자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또한 시민들은 기업 경영의 이해관계자로서, 기업은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시민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민사회는 직접적인 투자자 관점을 넘어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이에스지 경영을 판단하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에스지 경영’이라는 용어는 시민들에게 충분히 와닿는가? 시민들은 이에스지 경영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고, 이에스지 경영을 이루고 있는 기준들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이에스지 경영’이라고 부르면 대다수는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느낄 것이다. 혹시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아직도 시민들을 그런 존재로 두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도 드는 순간이다.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는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강화한다. 이대로 이에스지 경영을 계속 쓸 경우, 이에스지 경영의 주요한 당사자인 시민은 자신이 당사자인줄도 모른 채,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이야기로 여기고 외면할 것이 자명하다.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 기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영’. 길기는 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뜻을 잘 나타내는 짧으면서도 영향력 있는 용어로 나는 ‘사회 가치 경영’을 제안한다.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를 번역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에 수동적인 의미로서 ‘책임’을 요구했다면, 이제 이에스지 경영의 흐름 속에서 기업은 인류가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관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환경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되어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투자도 많이 받고 시민들의 신뢰와 사랑도 받게 된다. 기업 경영의 새로운 흐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이에스지 경영에 대해 시민들이 알게끔 하자. 시민은 기업 경영의 이해관계자로서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기준’에서 볼 때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는 칭찬을, 그렇지 않은 기업에는 비판을 가함으로써 기업들이 올바른 ‘기업 시민(Corporate Citizenship)’으로서 지속가능한 기업과 사회를 만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도 시민도 지금 그 기회를 맞았다. 이를 위해 먼저 ‘ESG 경영’이라는 아리송한 말이 아니라 쉬운 말로 하자. ‘사회가치경영’이 그것이다. 강민정 현재 한림대학교 사회혁신경영전공 교수 카이스트 경영대학 사회적기업가MBA 연구부교수, SK텔레콤 경영전략실 부장 역임 저서: 《탈일자리 시대와 청년의 일》 (박영사, 202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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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강민정
- 등록일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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