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

키오스크가 뭐예요?

  • 등록일: 2022.01.13
  • 조회수: 177

키오스크가 뭐예요?

이미향(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눈을 뜨면 새로운 기계가 나타나는 세상이다. 전자 장비가 발달하면서 사람을 대신하여 일하는 기계가 더욱 늘었다. 기차역이나 식당, 전시장 등지에 사람인 양 이용자를 맞이하는 기계가 있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 표를 사거나 주문하는 이것을 흔히 키오스크(kiosk)라고 부른다. 최신 장비는 아니나 전염병의 확산세 가운데 비대면 접촉이 선호되면서 사용량이 급성장한 기기 중 하나이다.


그림 1.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활용하는 키오스크. 주로 무인 ○○기로 바꿔쓸 수 있다.그림 1.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활용하는 키오스크. 주로 무인 ○○기로 바꿔쓸 수 있다.

  우리는 키오스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이르는 말인지, 어디에서 온 말인지는 잘 생각해 보지 않는다. 여러 사전을 찾아보면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라고 공통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터치스크린 방식을 사용’한다거나 ‘정보·통신 키오스크 단말을 이용’한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다. 그렇다. 무인 안내기 중에서도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신문물을 부를 때 우리는 특별히 키오스크라고 한다. 이 말이 매우 낯설지만 마땅히 대체할 이름이 없다. 사전에서조차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휘의 보물 창고라는 사전이 아직 감당해 내지 못한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키오스크라는 이름을 도마 위에 올려보자. 키오스크는 설치된 장소에 따라 하는 일이 다양하다. 기기의 기능에 따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표를 팔면 무인 발권기, 물건을 팔면 무인 판매기, 정보를 안내하면 무인 안내기와 같이 써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100년 전과 모양이 바뀌어도 모자는 여전히 모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익숙한 말이 새로운 대상을 충분히 지시할 수 있다. 새로운 문물에는 꼭 기발한 새말을 만들어 붙여야만 하는가? 신기술이 들어간 문물을 유독 외국어로 부르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키오스크(kiosk, kiosque)는 궁전을 이르는 페르시아어 ‘쿠슈크(kushk)’에서 유래되었다. 그 흔적이 남은 터키어 ‘쾨슈크(köşk)’는 작은 여름용 별장 또는 정원에 건축된 작은 누각을 이른다. 이후 키오스크는 그러한 모양으로 지은 간이 건축물을 이르게 된다. 20세기 초, 사람이 잘 모이는 길목이나 광장에 앞면이 열린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열고 신문이나 잡지를 팔았는데, 이러한 간이 건축물을 키오스크와 닮은꼴로 여긴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키오스크는 한 번 더 의미를 갈아입는다. 정보화 사회의 기세를 타고, 사람 없이 정보를 제공하거나 업무를 자동으로 수행하는 기계를 부르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림 2. 20세기 초부터 간이 건축물에 설치한 상점을 키오스크라고 불렀다.그림 2. 20세기 초부터 간이 건축물에 설치한 상점을 키오스크라고 불렀다.

  키오스크는 여전히 유동 인구가 많고 개방된 장소에 설치된다. 상품 정보와 시설물을 안내하는 동시에 광고도 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를 설명한 어떤 사전에든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이라는 설명이 함께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키오스크가 공공성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것은 주로 식당, 버스터미널, 지하철, 관공서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다.

  그러면 과연 키오스크는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가? 공공장소에 세워둬도 될 만큼 대중의 공익에 이바지하고 있는가? 키오스크에는 온갖 외국어가 도배되어 있다. 셀프 오더, 테이크 아웃, 솔드 아웃, 사이즈 업, 더블샷, 사이드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 온통 외국어로 적혀 있는데도 항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더욱 놀랍다. 최신 문물은 응당 외국어로 되어 있다는 뜻인지, 이용에 서툰 사람으로 보이기 싫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기계 앞에서 헤매는 사람은 굳이 연로한 분들만이 아니다. 분야가 조금만 달라지면 누구든지 소외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개발되는 키오스크가 유독 비용 절감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비용상 일어나는 문제 이외의 것은 문제로 여기지 않고, 그저 감내할 불편 정도로 여기고 만다. 사회 분열과 세대 간 소통 단절은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앉는다. 공공이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어떤 이는 정보를 소유할 권리를 두 배로 가지고, 어떤 이는 정보를 얻지 못해도 되는가?

  신문 기사를 보니, 요즘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사용법을 익히는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같은 버튼을 여러 번 누르다가 햄버거 8개를 받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그런데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실습용 키오스크, 키오스크 활용 수업, 키오스크 디자인’과 같이, 하소연을 하는데도 여전히 키오스크라는 말이 쓰이기 때문이다. 통합과 소통을 외치는 시대이다. 소수가 알아듣는 말은 옹알이에 불과하다. 한국의 정보 통신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데, 전자 장비에 한국말이 들어갈 수는 없는가? 공공성이 깃든 좋은 말을 고민하다 보면, 현명한 언중이 사전의 빈칸을 메워 내는 날이 올 것이다.


조형근

이미향(영남대학교 교수)

  • 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 한국일보 사설 위원